[엽편소설] 1349
현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기지개 같은 것이었다. 아직 캄캄한 밖의 여운이 창문에 늘어져 붙어있는 그전부터 현의 하루가 시작된다. 찬 에어컨 바람이 쉬익거리며 돌아가는 커다란 방 한가운데 테이블 배드 위에 현이 수술대에 오른 환자처럼 잔다. 아니, 세상과 끊긴 진공 상태로 놓여 있다.
알람이 울리기 바로 전 항상 현을 깨우는 건 구독을 해지한 어떤 글이다. 실제 알람 소리가 현을 깨운 적은 없다. 그 글이 현을 세상에 데려다 둔다. 얼마나 어떤 것들을 잃게 될까. 잃어버리기, 그게 현이 사는 방식이다.
다르게 시작하는 날이다. 구독을 해지했으니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한 글을 기다리는 아이러니가 단 일초도 안 되는 시간에 깡그리 해소된다. 오늘이 그렇다. 글이 아닌, 알람이 울릴 거라는 불안이 진공의 잠 속에서도 느껴진다. 날 깨우러 오는 중이니? 그러니? 불안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눈을 뜬다. 아직 깜깜한 후텁함, 에어컨의 윙윙 소리가 뜨겁게 귀에 박힌다.
침대에 걸터앉아 폰에 손을 대니 글과 알람 사이에 일 분쯤 남아있는 시간이 분주하다. 글이 오지 않았구나. 아, 다시 확인한다. 표식이 없다. 번개 치는 아우성으로 항상 그 시간에 현을 지나가며 눈을 깨우는 그 증표가 없다. 이상한 상실감과 공허가 온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해지한 구독에 이제야 답하는 건가. 무엇이든 해야 한다,
더듬거리며 차 키를 챙겨 허둥지둥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가슴이 조금은 트이며 동트는 하늘을 같이 달린다. 하늘에 흐르는 시작의 센슈얼, 핑크인지 주홍인지 모를 압축된 공기가 조금씩 퍼져나가는 새벽이다. 어디로 가는 건가. 고속도로의 그 끝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 한강 남쪽 길에 오른다, 왜 글이...
에스뿌레쏘를 마시고 싶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직 뻑뻑한 눈을 감는다. 또 다른 자신에게마저 들키지 않도록 순식간에 눈물을 들이마시고 폰을 열고 영화 한 편을 예매한다. 한 번 보고도 여전히 가슴을 후비는 예매에 조용한 흥분이 온다. 조조가 가장 빠른 곳으로 가는 중이었나 보구나 어떤 새벽의 습관처럼. 마음이 흩어질 때마다 온다.
달이 뜨는 주차장에 들어선다. 주차장에 이름이 있어서 좋아하는 곳이기도 한, 달주차장이라니. 달을 더 좋아하기로 한다. 현의 변덕과 괜한 흥분들을 재우는 영화관 깊숙한 자리에서 이미 본 영화의 보지 못한 장면들과 감성들로 새로운 퍼즐을 맞춘다.
현에게 그는 항상 새롭게 맞추는 퍼즐이었다. 그리움, 현의 멀쩡해 보이는 일상을 나락으로 내모는 그의 모든 순간들을 여전히 어쩌지는 못한다. 그는 현에게 현재완료진행형이다.
진한 영화를 마친 후 번개 모양으로 꽂혀있는 알람을 본다. 그의 글, 현의 눈이 흔들리며 무릎 위로 떨어지는 무게를 그대로 받아 안는다.
이제 어디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