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새벽

by 서희복

깨어서 한 시간쯤 눈 뜬 어둠 아래는 고요하다. 까만 삼차원의 공간을 벽에 돌려 보내고 하루를 담아야 할 자신으로 선다. 늘이 내 삶에 붙는다.


비가 온다. 커다란 창문을 다닥다닥 안고 있는 간절한 빗방울의 불안을 본다. 지나가는 안개가 다정히 스치기라도 하면 이내 무거운 몸은 미끄러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이다. 그걸 알면서도 빗방울은 언제나 유리창에 붙어 최선을 다한다.


뭔가가 들어간 적이 언제였는지 예리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공복. 그건 날카로운, 일말의 허무한 통증의 외침 같은 그런 변태적 행복감이다. 위장을 차갑게 휩쓸고 간다. 비우지 못했던 답답함보다 비어있는 충만에 놀란다.


이 얇다래진 위장 벽에 진한 카페인을 들이붓고 나서 비어있다가 비어있지 않음에 정신을 놓는다. 하얗게. 비우기와 덜 비우기 더 덜 비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몸과 마음의 비우기가 서로 다른 기울기로 삐딱하다.


위장을 잔뜩 채우고 나면 머리가 비워지고 해야 할 생각이 비워진다. 미뤄진 생각은 시간을 미루고 하루를 미루고 살아 있을 날 너머로 지나간다. 삶이 조금 짧아진대도 하루쯤 포만의 나른함에 두 손을 든다.


새벽 공복에서 시작해 가득 찬 상상의 위장을 지나 나른함에 다다르며 그래도 공복의 짜릿함이 좋다 한다.


내일의 공복은 내일 생각해야지, 내일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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