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과 2분의 1 by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1963, 2025
고뇌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 그 어떤 것도 풀리지 않는 시간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 트럼펫을 부는 뮤지션도, 뻥튀기를 파는 강냉이 아저씨도, 어떤 단어도 위로가 될 수 없는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꿈과 닿은 심리는 초현실이다. 남성의 눈으로 본 여성에 대한 편협하고도 이상적인 초현실과 비굴한 실제의 사이를 견디지 못한다. 당신의 초현실은 나의 현실을 세차게 타격한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계들, 쫓기는 듯한 압력에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길에는 더욱더 안개만 짙어질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멈춰 서서 눈을 감는 것이 낫다. 명확한 종착지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에 고뇌한다.
아내와 정부 사이의 거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예쁜 엉덩이가 있고, 지적인 눈빛이 있고, 부정 nagation 하는 현실이 있다. 내가 지금 부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정은 그 자체를 켜켜이 쌓아가고 그 사이에는 자신에 대한 불신과 불명확한 모호함이 자리한다. 클라우디아의 알 수 없는 미소, 긴장된 조언들에 방향타를 제대로 조정한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예민하게 알아보는 눈은 예술가에게 필수다.
자신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시간들을 타인에게 확신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충 전해지겠지 하는 안일함은 이해보다는 오해로 기울게 하는 촉매일 뿐이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시도 자체가 귀한 기회다. 없음으로부터 비로소 깨닫는 있음에 대한 열망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다.
있는 것이 확실한 여백을 채우는 일, 그 길을 갈 것이다. 지금껏 쌓아둔 8이라는 부피와 여전히 모자란 1/2이라는 결핍이 더 큰 성장을 이루리라.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작가나 감독들에게는 긴장을 주지만 독자에게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나는 언제나 인내로 기다린다. 작위적이지 않은 영화 속 영감이 뜨겁게 타올라 전해지기를, 작가의 고뇌를 공감하며 같이 안타까워하기를, 현재를 퍼올려 그것만으로도 평생 되새길 교훈이 되기를.
감독의 '8과 2분의 1'과는 매우 요원한 거리지만 여전히 나의 1과 2분의 1은 아주 미세하게 한 발가락쯤의 성장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탈리아 영화는 범접하지 못할 오라(aura)가 있다. 항상 입을 벌린 채로 엔딩 크레딧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