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로
詩가 태어나는 곳을 알 수 없다. 응어리가 머물며 오해했던 시간들을 詩의 정착지였다고 믿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래오래 속을 끓인 시간들, 그것들이 기어코 詩가 되나 보다.
머무는 찰나들이 세포를 건드리고 가면 그 떨림으로 오래 지탱할 수 있는 먼 거리를 남긴다. 이내 다시 떠나는 그들은 유목하는 영혼이다. 어떤 가슴에는 눈물을 남기고 다른 가슴에는 더 살려는 의지를 쥐어 준다.
그래도 되는 거냐고 詩는 묻지 않는다. 공기처럼 떠다니다 끌림이 있는 곳에 머물다 간다. 시어의 무게를 가슴에 심어 놓고 오래 견딜 거라는 다짐을 놓고 다시 떠난다. 그렇게 지근하게 살아온 세월이 다시 詩로 태어나는 유목의 길이다.
정착하다 떠나 돌아오는 습관의 인이 뿌리밖힌 곳이 아니다. 유영하다 잠시 내려 다시 박차고 올라간다. 깃털같이 가벼운 시간들을 품은 詩는 무거운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를 허락한다.
그들이 내려주고 간 몇 개의 은유가 하루를 단단하게 만들고 쉬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눈가에 머문다. 방황하는 심장에 이보다 더 채울만한 것이 있던가. 詩가 떠난다. 그리고 나는 산다.
아일랜드의 작은 섬 이니스프리에 살다 떠나고, 같이 하면서도 스스로 독립적인 사랑을 품으며 고독한 감성에 빠지곤 했다. 사람이 없어도 세상은 자연이라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가지 않은 길을 길게 바라보며, 길 위의 죽음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절망을 떨구며 일어나 한 발을 내딛곤 했다. 예이츠부터 포우까지 흩뿌려지는 시어를 잠시 맞았을 뿐이었다.
흐르는 물살에 그저 마음을 맡겨두기도 했다. 우울한 공허에 침잠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람처럼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잠시 머물다 떠나곤 했다. 삶이 고뇌일 때 스쳐 지나간 그의 시어들에 얼마나 가슴을 비워냈던가. 강은교부터 마종기까지 붙들고자 갈증 하면서도 움켜쥘 수 없었다.
나무에 대한 詩를 헤집고 다니다가, 다른 색깔의 젠더를 맞닥뜨리고, 난처하게 떨구고 간 내면의 욕망들에 뒤집어진 속을 들고 내가 나를 찾아온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詩는 한순간도 냉정하게 떠나지 않았고 지루하게 머물지도 않았다. 헤세로 돌아갔다가 김현을 지나 이혜미에서 멈칫했다. 그런 촘촘한 흔적들의 집합, 시간, 삶의 합.
詩를 만난 처음부터 휘청거리는 꽃씨처럼 산다, 부유하는 그 아름다움. 발을 땅에 심었다면 볼 수 없었을, 할 수 없었을, 살 수 없었을 시간들.
그래서 떠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