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C. 올프, 『천사여, 고향을 보라』(p.274)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p. 274


오래 같이 머물고 싶은 사람, 마지막 사람이 당신이면 좋겠다는 바람은 아프다. 쓸려 아린 상처들이 가슴속 어딘가 곳곳에 머문다. 그 상처들을 애써 무시하며 살아온 시간이 앞다투듯 드러날 때가 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끌어안아야지 인정하면서도 수니는 여전히 빈 가슴이다.


단 일주일의 시간이 무엇을 해줄까. 정해둔 그 시한부의 의지가 두려운 건지, 그만큼의 시간이라도 제대로 살아보려는 안간힘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흐르듯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충분히 살아보았다고 느끼고 싶은 건 어떤 건지, 고집스레 가재도구들을 살 때 그 둘을 따라가는 가슴에 내내 까맣게 그을음이 인다.


스쳐가 버린 사랑과 죽음이 여전하다. 생생하게 남은 무덤 속 망령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획이 나뉘어 하나의 기억이 다른 하나를 밀어내 영원한 망각으로 보내지 않는 한, 그 경계들이 가느다랗게 이어져 슬픔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반대를 뒤로하고 도주한 연인들처럼 만들어둔 괜한 헛웃음은 남자의 미래를 향한 암시로 보인다.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강박으로 사놓은 수면제의 미련, 미리 준비해 둔 죽음은 삶에 대한 갈증이다. 한알마다 살아온 기억들이 울렁거리고, 마지막 알약에는 더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희망을 기대어 두는 것이다.


그들의 일주일은 수니의 마지막을 향해 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혼자의 영원한 고독으로 수니가 떠나고 있다.


끝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남겨둘 것이 없다는 것, 후회할 것도 없다는 거다. 그래야 하는 거다. 가는 사람에게 남은 사람들은 그냥 잉여일 뿐이다.


한 사람이 정한 그만의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은 충분히 준비된 시간이다.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거다. 더 이어질수록 색깔이 바라지듯 구질하고 초라해질테니. 가장 빛나는 그 순간의 엔딩은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수니의 길은 그 반대일 것 같아 불안하게 마음이 일렁인다. 그녀의 끝은 알지만 거기까지의 그녀를 모두 잊어버린 나는 가느다란 희망만 남겨둔다. 그녀가 내게 고개를 끄덕여 주기를 바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