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華榮, 『地中海, 내 푸른 영혼』 (p.219)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p.219


등에 바라는 말을 끄적이는 외로움으로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결국 공허했다. 용기 내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람을 내려놓은 이기적인 마음을 보았다. 저래도 좋은 사람은 없다. 수니는 그가 종용하는 대로 그렇게 멀어지며 포기하게 되리라는 마음을 주입하고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여러 개의 집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집이기도 하다. 어떤 시간이 흔적으로 새겨져 있는지 집 안에서와 밖에서와의 대면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밖에서는 견딜만한 시간이라고 느껴지다가도 기억의 밀도가 높은 안에서는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고통으로 새겨지고 마는 것이다.


가장 이기적인 사랑을 본다. 꿰매 붙였던 아플리케로 달려있다가 타인의 손으로 뜯겨 나가 여전히 그 자리 공허한 구멍으로 남는 사람을 본다. 마음껏 무너지고 싶어 선택하는 이별, 아끼니까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역설은 위선이다. 아파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수니가 가여워 나는, 그녀를 놓아버린 사람에게 원망의 눈물을 보낸다.


지중해(地中海)를 끌어안은 빛은 슬픈 시작과 그 슬픔으로 회귀하는 끝이다. 수니가 걸어가는 길을 눈물을 가득 담은 눈으로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하는 엄마는 이미 찢어져버린 가슴에 더 남은 것이 없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자식이 다른 사람의 자식 때문에 받은 상처, 그 자식을 잃은 절망으로 더 뼈아프게 고통을 준 사람, 내가 낳은 자식이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인 자신의 낮은 한숨마저도 상처가 될까 두렵다.


운명처럼 되돌아오는 그 첫 통증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막다른 절망도 그대로다. 스스로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시작이고 또 끝이 되는 그 빛의 한가운데서 다시 한번 더 지난 시간을 헤집으며 마지막 정리를 한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두려움은 시작을 되새기고 지난 시간에 집착하게 한다. 어쩌면 이미 끝난 건지도 모르는데 스스로 부정하는 사이에 어느 지점에서 끝없이 멈춰 서있다. 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바람도 없이 멈춰 있었으면 하는 그 순간을 홀로 공허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