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끝은 지루한 방향이다. 언제가 거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발을 떼는 순간 새로울 것이다. 그 걸어가는 흔적이 삶으로 남아 마지막 순간을 버티게 하는 거다.
혼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매번 아프게 돌아온다. 같이 하는 사람들의 눈빛에 서럽고 다독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온기를 외면해 본다. 혼자 먹는 밥, 혼자가 싫은데 꾸역꾸역 넘어가며 식도에 매달리는 밥과 국과 김치와 멸치, 달걀말이가 천천히 무감각하게 어디론가 내려간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혼자 하는 것인데도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맞은 편의 빈자리에 목이 멘다.
사람이 없으니 비라도 눈이라도 기다리지만 이내 더 공허해진다. 그런 날엔 창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흠뻑 그 속으로 비가 되고 눈이 되는 것이 나으리라. 떠난 사람으로부터의 안부는 잔인하다. 그렇게 편안하게 챙겨줄 거면 가지 말아야지, 수니를 두고 간 남자는 비겁하다.
마음이 삭아가니 몸도 정상이 아니다. 몸이 정상이 아니면 마음 또한 어수선하다. 그렇게 과거 한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수니를 바라보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 의사와 환자, 뭔가 진부의 끝을 파헤치는 느낌이다. 그때의 드라마고 그 과거의 감성이지만 가여운 그 끝으로 수니가 가기 위한 다리쯤으로 그를 본다. 측은지심.
스스로 끊지 않아도 어차피 스러지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수니에게는 다행인지도.
이미 책은 다 읽었지만 글을 쓸 수 없었다. 혼자가 그토록 싫은데 혼자여야만 하는 그런 시간을 글로 되새김질하는 게 요즘 매우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다.
소설가 한수산의 닳아버린 손가락 끝을 상상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사랑에 대한 소설일 거라 예감하며 썼다는데 꼭 이렇게 너덜너덜 보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구차함이 싫다. 구차하다 비루해지고 구걸하게 된다. 가장 최악의 끝이다. 가장 지루한 종착지를 더 지루하게 만드는.
오늘 문혜연의 시, '파도가 부서진 자리'를 읽다가 마지막 글자 '흰'에서 폭풍처럼 꺼억거렸다. 단호하게 하얗게 누가 봐도 순결하게 그런 마지막을 상상했다. 단단하게 뭉쳐있는 '흰'이 갑자기 하늘로 흩날리는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자리에서 하얗게 사라져도 좋을 것 같았다.
앉아 있던 변기가 너무 하얘서 깜짝 놀랐다. '흰' 그 무엇에 볼 일도 못 보고 엉거주춤하다가 화장실에서는 시집을 읽지 않아야지 했다. 가벼워지고 싶은 곳에 들어갔다가 시지프스의 바위를 건네 안은 것 마냥 깊이 무겁게 오랫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이런 시간, 누군가 진실을 향해 나의 팔을 낚아챈 것 같은 기쁜 환각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