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L. 모노, 『우연과 필연』(p.328)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p.328


죽고자 떠난 여행에서 심리적 갈림길은 선명했다. 죽기 위한 도구를 집착적으로 모으던 사람은 죽을 준비를 한다기보다 삶의 강렬함을 더 원한다.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그래서 오히려 죽고자 하는 수니가 담담하게 살아보도록 하자며 말을 걸 때 빛의 끝자락에서 구원받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죽음이란 그런 거다. 삶이란 게 그런 거란 말이다.


홀로 서서 그의 죽음에 대한 의지를 희석한다. 말한다. 바다로 나간다. 사랑한다. 그 몸짓이 얼마나 깊었는지 얼마나 뜨거운 의미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죽을 나는 죽지 않을 너를 더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가장 진심으로 그가 서 있을 생명을 지닌 마지막 심장 한 조각을 남겨두고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었을 수니에게 들어간다.


죽음을 보장받는 것 같은 시한부 그녀의 삶이 이 한수산 소설의 거의 마지막 끝에서 다소 비겁하다 생각했다. 아마도 자살에 대한 사회적 눈치였을까. 소설 초입에서 '죽음'이라는 내밀한 공포를 끌어올려두고 이야기 전개는 진부한 끝으로 마무리하려나 보다 그랬다. 들리지 않는 변명을 읽어 내라 주문하는 작가에게 실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라면 어떻게 결말을 쓸까.


살리려는 의지, 그게 전부인 장이다. 뜬금없이 나타난 사족 같은 경찰은 이 소설에서 가장 유치한 훈계로 들렸다. 그럼에도 수니가 가는 길에 같이 서서 그녀를 가늠해 본다. 지지리도 가여운데 가장 단단한 마음을 가진 그녀다. 타인으로부터 내려진 시한부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로 몸을 뒤적거려 내린 고통의 끝 길, 결국에는 그녀 자신이 정하는 길로 갈 것이다.




J. L.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라는 교차로적 해석에서 나는 한수산이 빌린 개인적 가치보다 지금을 사는 현상적인 뒤틀림을 바라본다. 사랑에 처절한 40여 년 전의 이야기에서 내가 사는 시대로 넘어왔다.


우연한 출현으로 필연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종의 무자비한 지적 허영과 욕망에 대소한다. 쪽의 왕국과 푹신하게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암흑의 사이에서 어떻게든 필연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이어나가려는 안간힘을 어디서나 목격한다. 암흑의 달콤함은 폭도가 되고 폭력을 부르고 전쟁놀이에 한창이다. 그 달콤함이 문제인 것이다. 오직 하나로만 수렴하려는 광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국, 이스라엘, 이주 노동자, 잘린 팔다리, 무책임, 굶어 죽어가며 박해받는 사람들, 광속의 자본의 쏠림, 진실 따윈 던져버린 군중들의 떠밀림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족집게를 쓰는 정치꾼들...


전쟁으로 '다름'을 말살하고 그 과정의 혹독한 '기아'를 당연시하는 인간들은 타인의 자유를 빼앗은 것 그 이상으로 홀로 서서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아무 생각 하기 싫은 무책임으로 뜨거운 군중 속에 숨어 비굴하게 같은 방향으로 뛰는 사람들, 그 힘이 영원할 줄 알고 침 흘리며 매달리는 맹목에 할 말을 잃은 지는 오래다. 오롯이 설 기회, 말할 기회, 생각할 기회를 자신에게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다 버리고 유령처럼 광폭하게 떠돌고 있다.


신을 위해 살육하는 '성전'의 공포에 전율한다. 그 살육의 과정이 그 시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기아'로 내 모는 인간의 극한 잔인성에 떨고 있다. '다름'의 불안을 인간은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은 필연이 되는 것일까. 몹시 무섭다.


우연의 겸손함으로 평화를 지향하기보다 필연을 빙자한 전체주의적 성향이 광기로 변하는 시대를 산다. 국가도 도시도 개인도. 타인의 이름을 업고 살려는 사람으로부터 사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침 흘리며 바라보다 눈이 번쩍하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좀비처럼 떠돌고 있다.


사랑에 대한 소설을 읽다가 몇 개 단어에 들끓어봤다. 나는 내 사랑도 믿고 이 세상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