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기도문, 『성모송(聖母誦)』(p.354)

한수산의 『이별없는 아침』, 중앙일보사, 1984

by 서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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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톨릭 기도문과는 다른 살아남은 자의 독백은 살려는 투쟁이다. 그래야 살아낼 수 있으니까. 사랑이라는 극도의 고통 뒤 남는 그 끝 앙금까지 가지 않으려는 고독의 몸부림,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냔 말이다.


인류적 도발에 비겁하게 물러섰던 드 보통과 까뮈, 그리고 흄, 어느 미국 철학과 교수를 떠올리며 그래 그런 거지 체념한다. 40년 전의 한수산도 사회적 교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최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죽음에 비겁할 필요는 없다.


수니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때를 택한다. 불투명한 시한부 6개월의 고통을 죽음이라는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녀의 얼굴, 껍데기에 새겨진 처참, 이승에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그 무참함으로 그녀가 떠나갔다.


그녀를 생명이라 불리는 곳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친구와 그는 남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다. 그런 게 삶이라는 거다.


수니가 가고 죽음이라는 마지막 거대한 희망이 남았다,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