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바]
'이도준입니다.'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벌컥 연 톡 메시지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떡하지? 혜주는 톡으로 답을 해야 할지 무응답으로 더 두어야 할지 괜히 허둥대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톡 드립니다. 바쁘신가 봅니다.'
아, 이십여분 전쯤에 온 부재중 전화가 그거였구나. 혜주의 휴대전화는 무음이다. 전화를 할 때도 무척 자신을 얼르고 달래고 준비되었다 진정하고 나서 상대의 버튼을 누른다. 어떡하지? 매번 비슷하게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 하던 짓을 하고 나서 괜한 후폭풍을 맞는 것 같았다. 무슨 와인 클럽이냐고!
와인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기숙사에 숨겨 들여가 마셨던 술이었다. 술을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 맞았다.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오라고 하면 출렁거리며 넘치는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며 집에 오곤 했지만 그건 취하기 위해서거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신 것은 아니었다. 그걸 술을 시작했다고 하기엔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가장 만만하게 흔한 술이 미국에선 와인이었고 치즈 몇 조각이면 두어 시간 생각에 잠겨 반 병쯤은 마실 수 있었다. 십 년을 넘게 혼자였다. 그렇게 혼자 편하게 살다가 왜 사십이나 넘어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는지 도통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아마 한국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사람을 많이 엮어 두어야 사는 게 힘들지 않을 거라는 선배의 말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그걸 실천하느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람, 사람들... 참, 익숙해지지 않는 글자들, 부피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온도다.
와인셀러 때문이었다. 와인 30병쯤이면 한 일 년을 밖으로 사러 나가지 않아도 될 거라 나름 머리를 쓴 것이었다. 역시 뼛속까지 혼자를 즐기는 건가. 피식 웃으며 검색을 하다가 와인 동호회까지 들어간 거다.
고급 와인바에는 드레스코드가 있었다. 동호회라곤 대학 때 독서토론 클럽 정도라 티셔츠에 수수하거나 가끔 초라해 보여도 쿨한 우울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와인바는 달랐다. 그날 마실 와인에 따라 자신이 고른 옷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이라 호기심이 일면서도 속물적 유치함을 느꼈다. 나는 몸에 착 붙는 터틀넥 티셔츠에 무릎이 뚫린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나마 오렌지색 가죽 단화가 대체로 시크했다.
버건디 원피스 드레스의 농염함도 있었고 옅은 하늘색 드레스셔츠의 귀공자도 있었다. 이상한 이물감을 느끼며 첫 소개에 와인셀러를 구하다 여기까지 왔노라 은은하게 위선 된 웃음으로 서로를 훑어보며 즐기던 분위기를 한 방에 깼다. 차라리 백화점을 갈 것을, 뭐에 홀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목인사를 까닥거리고는 바로 나왔다. 그래 혼자가 편하지. 뭘 바라고 여기를 온 거야. 오프 모임을 위해 남긴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후, 한숨을 한번 쉬고는 초록색 전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첫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술 한잔 하실래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