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존재의 두께
원하던 자리는 품을 내주지 않는다.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곳에 남은 체취나 흐린 자국들이 휩쓸고 간 자리가 품이며 고향이다. 시간이 뒤죽박죽이 아니라 마음이 온통 혼란인 거다.
충만하게 여유를 사는 사람은 철학에 골몰하지 않는다. 현학의 부피를 키워 자신 아닌 모습으로 타인들 사이에 서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는 사람은 어디에라도 의존한다. 철학과 종교와 예술을 입고 자기 밖의 세상에서 방황한다.
세상을 채우는 부피만큼의 겸손과 그 시간의 존재에 기꺼운 그 찰나의 상태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단단하게 하는 무게 추다. 똑같은 종착역을 향해 가지만 초조하지 않다. 자신의 발현은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새벽이 지나간다. 어느 순간을 새벽이라 부를지 알 수없다. 수많은 다른 온도의 새벽과 다른 소리들을 구별하는 것은 그 시간을 가득 사는 비결이다. 어제의 바람과 다른 흔들림에 오늘의 뺨을 얼마큼 감쌀지 자연의 흐름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곳에 나는 없다. 내 이름이 불리는 그 순간부터 익숙해지는 삶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눈을 보며 인사하고 악수를 하거나 가벼이 손을 흔든다. 친절한 긴장들이 흐르던 얼마간의 공기가 여전히 기쁘다. 그 시간을 지나도 약간의 불안 속에 옳게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다시 지금을 이어간다.
주위로부터의 도움과 친절, 수줍은 위안과 끝내 닿지 않은 허한 농담들을 지나 다시 새로워지는 자신으로 서는 일, 그렇게 사는 것이다. 갖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이는 공간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하나의 동작이 시간을 앞서 가고 거기에 내 바람을 올려둔다.
문득 내 언어로 들어오는 이방인의 낯선 목소리가 경이롭다. 사적인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나는 마주 보고 선 빛을 감지하면 우물쭈물 미소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하나가 된 듯 진부한 호기심들이 꼬리를 잇는다.
친절하게 세상을 응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 느낄 땐 그 시간과 공간에 맞는 관계로 돌아가면 된다. 초기화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누른 버튼이 완벽한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게로 깊이 편안해지는 방향에 나의 철학이 산다.
인식하고 깨닫고자 하는 고뇌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과 투쟁으로 그 실제의 삶과 세상에 발행한 철학이 다른 철학자들을 읽는다. 실제 삶과 철학 사이에서 인지부조화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대가라 불리는 자들의 번들거리는 변명과 그것을 전파하느라 허비하는 사람들의 시간에 측은함을 보낸다.
존재와 깨달음의 철학은 그것을 말한 자와 전한 자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