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18 탈착이 아니라 연결

by 서희복

버블티 깊숙하게 빨대를 넣으며 벽을 더듬어 코드를 꼽는다. 시멘트를 뚫고 어떤 지끈거림이 달린다. 연결되고 싶다는 갈증이 당황하며 촉을 뻗지만 돌아오는 건 전기가 없다. 찌릿거리며 스마트폰을 한 바퀴 돌아 깨우는 부르르 신호가 없다.


그땐 그러고 말았다. 내 식도를 타고 들어오는 달콤한 펄이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도 상관없을 만큼 더 큰 행복감을 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 펄은 버블티를 흠씬 흔들 때 생기는 거품을 의미하는 거였다. 거품이 감싸고 있던 타피오카의 허세를 보는 것 같아 짠했다. 그걸 씹고 있던 나도 씹히던 타피오카도.


펄은 진주(pearl)라는 말이고 거품은 버블(bubble)인데 버블티 펄이라고 부르는 건 꾀죄죄한 타피오카가 진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뽐내는 꼴이 아닌가. 최대로 할인하는 명품 구제샵에 몰려가 월급의 두 배나 주고 백을 하나 사서 마치 천만 원 정가에 산 것처럼 어깨를 한껏 높이고 걸어 다니는 타피오카, 인간 결핍과 허세다.


사람끼리도 그렇다. 그날 그 시간 그 찰나의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를 싸고 있는 겉감에 손을 내민다. 삼베인지 비단인지에 따라 탈착의 시간이 결정된다. 연결의 시초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 가벼움에 치를 떨면서도, 광속의 탈과 필요의 착에 통곡하면서도 견디며 사는가 보다. 더 깊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의 우물에 지나치는 바람의 흔적만 가득하다. 돌아서야지.


아주 가끔 짧은 유튜브 한 꼭지가 친구로부터 온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나 TV를 보지 않는다. 마음이 가지 않기도 하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더 많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 알아야 할 세상과 따로 사는 것 같긴 하다. 몇 달 만에 친구가 보내준 일론 머스크의 예언이라는 유튜브를 들었다.


AI, 부, 경제, 불평등, 변화, 미래, 한국, 저출산, 감소, 멸종, 희망... 그런저런 말 중에 건진 건 희망의 끈이었다. 가야 할 길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인간 수명이 150년쯤 될 거라는,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과 다른 행성에 가보고 싶다는 그런 희망에 대한 끝말까지, 순수하게 진실로 믿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 순수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한다. 선과 악의 어느 지점에서 멸할 수도 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건져낸 세 개의 단어, 겉치레여서만은 안될 조용히 꾸준히 이어져야 할 그 말들을 담았다.


진실성

호기심

아름다움


어디에 서있는 걸까. 나는. 살아야 할 세 개의 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