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지 없는 세상이래도

17 소리 내어 읽어 주세요

by 서희복

얼마나 사라진 걸까

얼마나 남은 걸까 내 앞의 꼭지

얼마나 줄었을까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눈 속에 시신경이 비워진 자리가 운명인 인간은 그걸 더 겸손해 지라는 표식으로 여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 조심스럽게 잘 살펴보며 맹점이 없는 오징어나 문어보다 더 경건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래전 찌르는 통증을 명랑하게 무시하고 살아온 지금의 결과는 더 돌아볼 것도 없고 더더욱 후회할 일도 아니다. 그때로 돌아간대도 달라지지 않을 상황이니까. 누구나 자신의 아집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거니까.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의 보드랍고 스펀지 같이 폭신했던 몸뚱이는 자라면서 단단해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지며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닳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살만한 것이다. 늙어가고 있거나 죽어간다는 푸념 말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육체라는 게 아무리 되돌이키려 해도 한계가 있다. 80년을 살았는데 온갖 신약과 줄기세포 기술과 보조식품 덕으로 신체나이가 40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전문가들이 부추겨 세우며 40살 인척 하는 허세로 80년간 살아온 날들을 너무 가벼이 보는 건 아닐까.


그때 할 수 있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며 살다가 자연스럽게 가면 된다. 비뚤어진 자본의 흐름은 불평등을 훌쩍 넘어 불노불사를 탐하게 한다. 흘러넘치는 돈을 힘으로 오해하여 타인을 무시하고 고통 주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쏟아붓는 것이 차라리 낫긴 하지만 그 또한 결국 힘을 향한 욕망이다. 과시하고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욕심이다. 결핍을 채우기보다 과잉의 헛된 자만으로 삶을 낭비한다.


지금까지 내가 온 길을 꿋꿋하게 같이 해 온 내 두 눈이 지금 나의 신체 중 내 삶의 한계다. 어떤 사람은 위장이 안 좋아서 폐가 안 좋아서 간이 안 좋아서 또한 여러 가지 병증과 통증과 함께 살기도 한다. 삶의 질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극심한 통증은 그야말로 삶을 만신창이로 만든다. 그걸 겪었거나 겪고 있다면 무통의 평온한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안다.


시간을 겪을수록 여러 장기들이 낡아간다. 이런저런 내부 기관의 고통을 지나며 느낀 건 지금 뭔가 할 수 있는 건 미루지 말자는 거다. 하지만 너무 치열해지지도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 정한 속도로 편하게 가기를 바란다. 문득 끝이 오더라도 후회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종종 가만히 멈추고 새기곤 한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보는 것들의 경계가 추상화인 건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내 시간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성실하게 진심으로.


글자에 달린 작은 꼭지가 사라졌다가 흐려졌다가 오해를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맥락을 넓히려 노력한다. 단어보다 문장, 문장보다 큰 단락의 핵심에 더 기대어 살게 된다. 엉뚱하게 이해하기도 하고 황당한 질문도 하게 되고 오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남은 날들 중 가장 젊은 지금 나의 최선의 상태이다.


요즘은 텍스트를 낭독해 주는 AI도 많다. 나는 구글 확장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문서 작성 후 읽히곤 한다. 볼 수 없으면 들으면 되고, 쓰고 나서도 들으면서 수정이 가능하다. 나의 예민한 귀는 내 눈의 비서다.


언어에 기대어 사는 삶이라 참 녹록지 않지만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