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거기까지는
관계의 다리에는 양끝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인 복잡한 감정들이 제각기 빛을 내며 진열되어 있다. 이기와 이타의 저울 또한 누구나 다른 눈금으로 왔다 갔다 세상을 산다. 이타가 이기가 되고 이기가 더 큰 이기로 환원되어 관계의 꼬다리가 시든다. 배려 안에는 때로 모멸을 양념으로 하는 비루한 웃음이 토핑으로 얹힌다.
가능한 모든 감정들을 펼쳐두고 대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한바탕 뜨겁다. 더 나은 것을 지키기 위해 덜 나은 것을 포기하고 더 올라 보려는 안간힘을 밟히고 나면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다. 한 발만 더 움직이면 백기를 힘차게 흔들면서도 껍질에는 기쁜 웃음이라는 가면을 성급히 뒤집어써야 할 수도 있다.
위태로운 감정놀이를 끝까지 피하고 싶지만 아주 미세하게 침범하는 거리를 재면서 심장 꼭지를 틀어 쥔다. 그래야만 하는 건가, 그건 순전히 이기적인 찰나이고 상대는 살아남기 위해, 올라서기 위해 꼭 그러고 싶다는 걸 눈치챈다. 그래, 내어준다. 손이 번쩍 들린 네가 진거야. 예리한 모멸, 비루한 척하는 건 의도다.
감정의 방어에 드는 높은 에너지의 헛됨에 고의로 사회성을 포기하기도 한다. 최소의 이어짐 속에 자신으로 향하는 충실함이 느리지만 제대로의 느낌을 준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가식의 폭풍 속에서 제살을 깎아먹으며 호된 의식을 치렀다는 걸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웃는다. 기다린다. 대답한다. 다시 다리 양 끝에 선다. 앞으로 내디뎌 시도를 할 건지 뒤로 돌아 끊어 낼건지 받아둔 모멸의 길이를 재고 비루의 흔적을 찾는다. 내어준 순간들을 의식하고 받아 든 상처를 아물린다. 내 쪽으로 난 붉은 통증의 줄기를 단단히 밟고 서서 차가운 비바람을 심장으로 불러들여 상처를 식히고 또 식힌다.
온 힘을 다해 불덩이를 등에 받히고 꿋꿋하게 견디는 삶, 그만큼의 가치를 재어가며 여전히 지탱할만하다 속삭이는 건 모멸을 불쏘시개 삼은 만용이기도 하다. 지난하고 고된 날들, 얼마큼 단단하게 설 수 있는지 자신을 마주하며 남기는 흔적들이 다시 힘들다 느낄 때 불씨로 살아나 나를 태울 힘이 되기를 바란다.
무모한 바람이 분다. 지금 무지하니 좀 더 살아보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