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무실체
뿌리는 알 수 없다.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어디선가의 끝이 그 끝의 끝이었는지 끝이 시작되는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그 시점이었는지 알 수 없다.
문득 발견한 흔적으로 충분하다. 실체가 인정되지 않던 무수한 초사이의 자잘한 시간 조각들이 공백을 눌러 한 덩어리로 질식한다. 틈을 알 수 없는 흔적이 무겁게 흐른다.
되풀이되던 새 다짐을 매번 달려가 방해하고 성스러운 의식을 위한 바닥에 널브러져 눈을 감는다. 삼위일체가 가당치 않은 무신론자의 저항이 신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를 밀어낸다.
천진한 아이의 웃음이 경직되고 순진한 마음의 관대함에 찬물을 끼얹는다. 어떻게 해도 보려 하지 않는 실체를 아무리 실제 한다 어른거려도 뜬 눈이나 감은 눈이나 보이지 않는다 단언한다.
이미 속된 세상에서 얼룩진 영혼은 주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여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 바닥에 스민다. 기대하다 잠든 밤에는 꿈마저 한숨 쉬며 쪼그리다 깨어난다.
끝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서며 끝이 아닌 곳에서 막막하게 멈추어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끝이 아닌데 그 끝이 끝나는 곳이어야 비로소 끝이 날 것이다. 내딛어야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제대로 서야만 할 자리, 이미 성큼 떠나온 자리를 돌아보지 않으려 하지만 그 자리에 둔 답답한 처지는 지난 약속의 흔적 그대로다. 억지의 이어짐이 타당하지 않은 것을 안다.
하나씩 그대로 두는 시간을 연습한다. 자신에게 한 약속을 열어 타인이 한 약속을 대어 본다. 가당치 않은 기대에 누추한 머뭇거림을 묻고 어리숙하게 끄덕였던 고개를 바로 세운다. 그런 때가 온다.
헐렁한 말속에 끼워두었던 체념의 기운, 절망의 전조를 뱉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틈으로 흐르는 예후가 좋지 않대도 지난 어느 약속이 잠시라도 허락될 수 있진 않을지 헛된 온기를 품는다.
메스를 꽂은 기억이 없어도 봉합해야 할 상처들이 널브러진다. 잠깐씩만 울렁거리다 돌아가는 북극의 빛에 기대려 해도 사라지는 초록은 다시 어둠을 남기고 만다. 내딛으려면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동행하지 않을 것에 대해 단호하다.
어떤 세계는 발들이지 않음으로 완성된다. 허무한 시선보다 거기에 둔 흔적으로 충분한 때가 있다. 설득되지 않는 자신의 유리된 욕망을 인정해야만 한대도 않음과 없음을 이어가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생각지 않음 기대 없음 외롭지 않음 미련 없음 허무하지 않음 말 없음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