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베이지색

31 돌아가는 길

by 서희복

커다란 타원형 울카펫의 나풀거리는 올 사이에 따뜻한 기척이 산다. 가장 납작하게 누워 하늘을 향해 갈 수 있는 상상만큼 길고 높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 푹신하게 튕겨 오른다. 다시 살러간다.


그런 날이 올까


하드케이스 여행 가방을 열어두고 몇 가지 되지도 않은 선물을 만지작거린다. 제대로 닿을 수 있을지 선물마다 그어둔 긴 선을 따라가 친구의 이름을 확인한다. 그곳이 맞는 곳일까.


뜨겁게 끼어서 두통을 참던 좁은 시간의 통로들을 오십 센티 정도의 지름으로 더 넓혀 몸부림치며 눕고 싶다. 그럴 수 없어서 더 간절한 공간을 향한 갈증에 탄산수만 종일 흘려 넣는다.


공감보다 이익과 효율에만 급급한 인간의 이기에 눈과 귀와 입을 지운다. 목이 메어오는 서글픔에 외줄을 탄다. 내 엎어진 코와 벌어진 갈비뼈 사이에 커다란 기포들이 돌아다니며 냉기를 깊이 심어 두고 간다. 조금 뒤로 물러서도 괜찮다, 좋다.


그런 시간이 오고 있다


다시 냉장되어야 할 시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지금 존재를 위해 소비되는 것들에 대해 목록을 작성한다. 반드시 필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집착한 것들과 포기할 것들에 대해. 그리운 시간으로 돌아가려면 철저하게 혼자여야 한다.


날카로운 겨울로부터 걸어 나와 더 뾰족한 추위를 지난다. 아래로 향하는 차가움에 익숙하다가 머리끝이 다 서도 모자랄 만큼 더 높이 얼어버리는 자연을 겪는다. 너무 투명해서 푸른 정맥이 어른거리는 끝없는 자연에서 버려야 할 나를 내려두고 간다. 칼끝 같은 바람의 다정한 응원을 받아 간다. 다시 오라고 한다. 오려고 한다.


단순한 호기심과 관계의 빈정 사이에서 오래 머무르던 찌꺼기를 털고 간다. 배운다는 것은 물리적 기술과 실체에 대한 방법론이 아니다. 그들을 꿰어 맞추는 사람들의 열정과 하나씩 쌓이는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새로이 열 문들이 보이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감사합니다.


지구에 촘촘한 어느 곳은 듬성한 이런저런 인간종에 대해 생각하며 정리한다.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서로 할퀴는 다툼 속에서 경쟁 속에서 쟁취해야 할 시간을 삶으로 보는 인간들은 계속 번성할 것인지에 대해 이상한 코웃음이 났다.


종교, 종족, 가치, 방식, 방향, 그 어느 것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뿌리 깊은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세상이다. 불안을 참지 못하고 덧내는 세상이다. 본질적으로 일소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시간들, 그런 것들은 견디거나 덧내거나 일소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저 거기에 두는 것이다. 그 사이마다 인간들에게 남은 최소한의 경외나 아름다움을 놓아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허구이며 기만이다. 자연은 인간을 그대로 바라보지만 인간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자연이 재앙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재앙을 부른다. 그럼에도 곤두박질의 속도를 줄이려는 노력들을 보는 것은 기쁘다.


전시되는 욕망을 위해 마구 소비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되묻는다. 내가 내게 도시가 내게 특별했던 공간이 내게 그리고 자연이 내게.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