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녕히 계실 겁니다
호기심에 발을 들인 어떤 클럽을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책 몇 권을 준다니까 제목만 훑어 고르고 받고 읽지는 않고, 사유하는 글을 보내 준다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이따금씩 이메일로 도착하는 글을 읽는다. 몇 줄을 읽다가 더보기를 누른다. 끝까지 읽고 나면 항상 넓은 행간을 띄운 한 문장에 오래 머문다.
'안녕히 계세요.'
이 두 단어 한 문장을 읽고 나면 안녕히 계시는 것에 대해 헝클어진 마음이 된다. 몇 번째의 안녕히 계시라는 말에 이번에는 저는 잘 있을 겁니다 하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도 이내 안녕히 계세요 인사한다. 누가 받을는지도 모르는 소리 안나는 안부를 그저 전하는 거다.
안녕히 계시기 싫은 적도 많다. 반항에 혼자 속이 시끌거릴 때 나는 어느새 안녕히 계세요 그런다. 싫은데 안녕하라는 도발은 싫은 것을 더 늘리는 건지도 모른다. 두 배의 두께가 된 싫음을 올려다보며 헛 구멍이 많이 생긴 그 두께를 정리해야지 한다. 그래서 싫은 건 나쁜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아야 할 움직이는 상태인 거다. 스스로 알아서 정리되기도 한다. 항상 싫지 않으므로.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앞에 두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녕하지 않을 상태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안녕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다.
세상의 안녕하지 못한 구석을 전하는 글을 읽고 나면 닫고 있던 세상의 문을 빼꼼 연것 같이 비겁한 미안함이 든다. 종교적인 이유로 피를 말리고 삶을 말리는 악을 본다. 굶주림에 뼈의 윤곽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은 생명을 볼 때마다 방금 내 뱃속을 채운 기름진 끈적함이 검은 타르처럼 스멀댄다.
글의 힘을 믿는다. 나는 글을 읽는다. 읽어야 할 세상을 내게 옮겨다 주는 그들은 시지프다. 바위를 같이 밀어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을 읽고 경악하고 돌을 던지며 때론 잔 감동에 웃는다. 안녕히 계시라는 말에 심장이 쪼그라지며 양심 찌꺼기의 기척을 느낀다. 몸이 뻣뻣해졌다가 찰나의 절망을 지나 클릭 한 번으로 다른 세상으로 간다. 축하를 하고 상금을 받고 금빛의 웃음을 본다. 낯선 그곳과 더 낯선 저곳들.
인간들의 세상 곳곳은 따로따로 돌아간다. 안녕히 계시는 자들과 안녕히 계시고 싶은 자들의 치열한 욕망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안녕해야 할 생명들이 얇게 발려 나가며 투명해진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너무 투명해서.
신에게 기대는 자들은 신에게만 기대서 인간은 안중에 없고 어딘가에 있다는 신은 세상을 모두 환란에 몰아넣고 죽을 쑤고 있는 건지.
이런 와글빠글한 부조리에도 저는 안녕히 계시겠지요. 그들을 빼고 당신도. 제게는 없는 '신'을 가지고 있는 당'신'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