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도록
반드시 완성되어야 할 상태를 꿈속에 두고 내린다. 그렇게 꿈이었던 당황을 허겁지겁 안고 일어나 그제야 설계를 시작한다. 떡은 거기가 아니라고! 떡하니 있어야 할 제 자리가 있는 거니까. 말이 새어 나오면 부정이라도 탈 듯 앙다문 입술이 퍼렇도록 힘을 가두어 둔다. 입꼬리에 갇힌 이상한 슬픔이 눈을 따라 흘러내리면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상차림의 의식이 시작된다.
해가 구름 속에 가려진 채 영혼을 거두어 간다. 아닐 수도 있다는 불명확한 의식에 맹목의 신뢰를 얹는다. 그들이 올까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심함으로 장단 맞추며 흘러가야 한다. 거기에 정말 있어야 하는 건가요. 두 번 반의 절과 그보다 적은 혹은 많은 순종을 이해하지 못해서 곁눈질 흘긋거리며 각도를 맞춘다. 아름다운 들러리에 오기의 아침을 보내고 한꺼번에 열리는 소리의 길을 닦고 갈고 받아낸다. 혓몸을 입천장으로 밀며 다소 탁하게 소리내야 하는 구개음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날이다.
디지털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고개 각도가 일정하다. 나란한 턱선을 이으며 얼마간의 미동 없는 공기에 감탄한다. 갇힌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다. 백화수복이 몇 도일까요. 맥주보다 낮아요? 묻는 방향에서 대답이 오기 전에 무심히 고개를 묻고 있던 디지털 원주민에게서 주변 여러 주류의 도수가 줄줄 세워진다. 눈은 아래로 마음은 흐르지 않게 귀는 열고 필요한 정보는 재빠르다. 사는 각도가 다르니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다르리라. 원하는 것들 하며 살자. 그들에게 너에게 나에게 그런 날이 된다.
주변이 조금씩 이동하면 나도 움직인다. 내가 깊이 찍어두고 읽고 또 읽는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며 다르게 살아야 하는구나 정리한다. 나를 정리한다는 타동사가 아니라 스스로 정리하는 자동사다.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깨닫는다. 놓았던 넋을 주섬주섬 담아 채비를 한다. 할 것이 있다는 건 아직 이유가 남아 있다는 거다.
준비되어 있든 아니든 닥치는 시간을 채우는 능력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벌컥 안기면 너무 뒤로 밀리지 않게 받아 들면 된다. 울상이 된 뒤통수를 검게 덮고서 보란 듯이 미션을 성공할 수 있다. 남은 청주를 곱게 부어 마시며 홀로 아리랑으로 투명한 영혼을 자축하는 어깨춤을 춘다. 얼마나 여러 버전의 춤사위로 녹아들어야 할까. 치우지 못한 내 안의 곳간도 버거운데 붙은 타이틀마다 왜 가장 길고 가장 무겁고 가장 오래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과소평가하는 것인지 이 오랜 취기醉氣에서 벗어나야 알 수 있으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