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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Sep 14. 2023

WYD의 초대

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스무 살 때 온 가족이 다 같이 세례를 받았고 지금도 성가정으로 모두가 성당을 다니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다니게 된 데는 서로의 기적 같은 순간들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가족은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고향에 내려온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부모님 주소지가 속한 성당(본당이라고 칭함)을 다니게 되었고, 프리랜서라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어 평일 *미사 *전례 봉사를 맡아서 하게 되었다. 주말에는 여전히 서울에 다니던 성당으로 *주일 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내가 소속된 전례단이 코로나 이후로도 아직 봉사자가 충분하지 않아서 전례 봉사를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사이에 전례 단원들을 모집하고 교육시키고 어느 정도 전례 봉사가 수월해져서 기쁜 마음으로 후련하게 그만둘 수 있었다. 당시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서울까지 거의 매주 주말마다 운전하고 다녔는데 1년을 그렇게 열심히 다녀서 인지 아니면 고향에 어느 정도 정을 붙여서 인지 지금은 서울 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오롯이 본당 생활에 집중하고 있던 어느 날, 주일 미사 때 *주보 모집란에서 '2023년 8월 포르투갈 리스본 World Youth Day (이하 WYD)' 개최 소식을 보게 되었다. WYD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3~4년마다 다른 국가에 모여서 교황님과 같이 기도도 하고 미사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교류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한국에서는 WYD를 세계청년대회로 칭하고 있다. WYD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2014년 제6차 아시아 청년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때 교황님 방한으로 성당이 떠들썩했을 때인데 그때만 해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 이후 몇 년 뒤에 우연히 개최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어차피 회사원이라 2주의 시간을 내서 갈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자격요건을 한번 살펴보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당시 서울*교구에서의 모집요건은 만 34세 이하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 넘어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본당 주보에 나온 WYD 모집 공고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는데 매주 주보에 공고가 올라오니 이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냥 홈페이지나 살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속 교구에 들어갔는데 확인해 보니 모집요건이 만 40세였다. 잘못 봤나 싶었는데 여전히 만 40세였다. 그리고 2022년 8월 공고가 게재된 날 기준 내 나이는 만 39세였다.


나이 제한으로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세계청년대회 모집 공고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을 만난 기분이란... 더 신기했던 건 나이가 완화되었더라도 교적을 서울교구 소속으로 계속 두었다면 신청을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1년 전에 교적을 다시 고향 본당으로 옮겨 두었던 것이다. WYD를 신청할 때 교적 사본도 제출했어야 했기 때문에 소속 교구 관할 성당에 내 교적이 있어야 했다.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사실은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엄마께서 서울 주소지에 있는 성당 소속으로 되어있던 내 교적을 고향 본당으로 다시 옮기라고 하셨는데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싶어서 흘려 들었었다. 교적이 어디에 있든 봉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엄마의 재촉에 결국 교적을 고향 본당으로 옮겨 놓았던 것. 이제 프리랜서라 의지만 있다면 시간을 내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아귀가 맞는 게 마치 축제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2022년 10월경 WYD 신청이 오픈되자마자 준비해 두었던 신청서, 교적, 그리고 여권사본을 제출했다. 신청기간은 다소 긴 한 달 반이었는데 아마도 WYD 전체 일정이 약 3주이기에 휴가를 내야 하는 회사원 청년들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12월 초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면접 당일이 돼서 대리구청에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조를 배정받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5명이 한 조로 그룹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인이 많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신청인원이 저조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룹 면접을 볼 정도로 인원이 많은 걸까 싶었다. 대기 장소에 온 청년들은 서로 아는 사이들도 많아 보였다. 나는 어차피 혼자 왔고 여기서 활동하지도 않아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핸드폰으로 WYD를 검색하며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지원자가 먼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본인도 본당에서 혼자 왔다고 한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면접을 기다리는데 같은 조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 나한테 말 걸어준 자매님, 그리고 다른 3명이 한 조로 면접에 들어갔는데 신부님 세 분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일 연장자들이 모인 조라고... 아까 대화를 나눈 자매님도 나이대가 있구나 싶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WYD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였고, 두 번째는 힘든 여정이 될 터인데 체력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였다. 면접 대기하면서 벼락치기로 WYD에 대해서 읽어보길 잘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에 합격 통보와 함께 12월 말까지 총참가비인 450만 원 중 계약금으로 100만 원을 입금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2023년 8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되는 WYD에 참가하기까지의 여정을 보면 1년 전인 2022년 8월부터 개최 소식을 안내하고 10~11월에 신청을 받아 12월에 참가자를 확정한다. 그러면 약 7개월의 시간이 남는데 이 기간에는 WYD에 참가하기 위한 사전 준비모임을 갖는다. 매월 한 번씩 참가자들과 신부님들이 모여서 WYD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자료를 읽고 나눔을 하고 WYD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연습하거나 성가 연습 등 WYD를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안내받은 대로 12월 중에 계약금 입금을 완료했고 첫 번째 사전 준비모임은 1월에 예정되어 있었다.  



*미사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행하는 종교의식 (예배는 개신교, 미사는 성당)

*전례 - 신부님께서 미사를 거행하실 때 신자가 함께 참여하는 봉사 (해설, 독서, 성가 등)

*주일 - 일요일

*주보 - 성당마다 가톨릭 전체 행사, 교육, 직원모집, 혹은 본당 공지사항이 나와 있는 안내지

*교구 - 성당은 교구에 소속되어 운영되는데 지역별로 교구가 나누어져 있음 (서울은 서울교구, 경기도는 수원교구, 부산은 부산교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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