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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Sep 14. 2023

교구대회 +2일

아침 6시 반쯤 눈을 떴다. 오늘 아침식사도 주스, 햄이 들어간 빵, 사과를 받았다. 어제 마트에서 장을 봐온 바나나, 납작 복숭아도 같이 먹고 수시로 먹을 당근도 가방에 챙겨두었다. 그리고 티켓 한 장씩 나누어줬는데 9:30, 10:00, 10:30, 11:00 시간대와 Train, Fado, Castle 장소가 랜덤으로 적혀있는 티켓이었다. 내가 받은 티켓은 10:30 시간대였고 Fado라고 쓰여 있었다. Fado(파두)는 전통공연을 의미한다. 내일은 문화 체험의 날로 티켓에 적혀있는 시간에 맞춰서 방문하면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뒷면에는 방문할 수 있는 다른 장소들이 적혀있었는데 이 티켓만 보여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아침 9시에 운동장에 모였다. 오늘 오전에는 다른 국가의 순례자들과 조를 이루어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고 한다. 티켓에 번호도 적혀있었는데 조 번호였다. 각국에서 2명씩 같은 조이고 다른 나라까지 포함해서 약 8~10명이 한 조로 구성이 된다. 우리 교구에서는 로마에서 오신 신부님 한 분과 같은 조였다. 진행자가 부르는 번호대로 각 나라에서 조를 이루어 봉사자를 따라 봉사활동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는 캐나다, 멕시코, 사이판에서 온 순례자들이 한 조였고 15번이었는데 번호를 무작위로 불러서 거의 마지막에 출발했다. 2명이 1인조로 쓰레기 줍는 봉사를 할 예정이라며 쓰레기봉투를 나누어주었다. 아직 어색해하는 나와는 달리 신부님은 벌써 다른 나라 순례자들과의 친화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고 한국에서 왔냐고 묻더니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아주머니 이름은 MaryAnn이고 사이판에서 딸과 함께 WYD에 참가하러 왔다고 한다. 청년들만 신청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외국인들 중에는 나이대가 꽤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봉사자를 따라 봉사장소로 이동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하고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2019년에는 한국에도 왔었다고 한다. 사이판은 영어가 공용어라 그런지 영어 구사력이 뛰어났다.


약 30여분 걸었을까 염전이 보이고 염전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길에서 2인 1조로 플라스틱을 줍기 시작했다. 어제 본 타비라의 첫 이미지가 워낙 도로부터 건물도 깨끗해서 쓰레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구석구석 잘 찾아보면 간간이 보이기는 했다. MaryAnn과 수다 떨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밴을 탄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가 쓰레기를 줍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나는 좀 멀리 있어서 못 들었는데 신부님 말씀으로는 본인 땅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엄청 불쾌한 티를 내면서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허락 없이 본인 구역에 들어온 것이 싫었나 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침해로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결국 더는 봉사활동 진행이 어려워 일찍 마무리하고 나와 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좋은 친구 한 명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점심식사하러 가려고 다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온 단짝과 숙소 앞에서 만났는데 첫 사전 준비모임에서 우리 조였던 신부님과 다른 어린 청년들이 있었다. 둘이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신부님께서 초밥을 사주신다며 같이 가자고 하셨다. 우리까지 포함해서 8명 정도의 인원이 광장으로 가는 초입에 위치한 중국 요리와 초밥을 파는 식당으로 갔고 단짝과 나는 맥주 한 잔씩 주문하고 소고기 볶음면 (beef fried noodle)과 캘리포니아 롤을 시켰다. 중식과 일식을 다 하고 있는 곳이었는데도 기대보다 맛있었다. 신부님 덕분에 어린 친구들 사이에 껴서 점심식사도 감사히 얻어먹었지만 우리가 사드려야 되는데 싶은 마음 한 켠의 빚이란...

식사 후에 우리 둘은 인사를 하고 광장으로 다시 이동했고 한 동료가 맛있다며 추천해 준 Flavor Cafe를 갔다. 에그타르트 (Fabrica da Nata)와 라테를 주문했는데 둘 다 진짜 맛있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앉아있었는데 점심식사를 같이 한 신부님과 일행들도 이 카페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누가 한번 맛집이라고 하면 우르르 몰리는 한국인들!

오후에는 시내 골목골목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길라오 강(Gilão River)을 따라서 걷기도 하고, 골목 구석에 위치한 프라이빗한 바도 찾고 리베리아 마켓(Riberia market) 골목에 있는 식당들도 돌아보았다. 여전히 기념품 숍이나 주얼리 가게가 보이면 들러서 쇼핑하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중간에 또 다른 신부님과 일행을 만났는데 맛있는 젤라또 가게가 있다며 일부러 불러서 사주셨다는... 나는 베일리(Bailey 양주) 맛을 고르고 단짝은 과감하게 와사비맛을 골랐다. 베일리 맛은 너무 맛있었고 와사비맛도 어떨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타비라의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내 곳곳을 다니며 서로 정말 예쁜 동네다! 를 남발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 같이 숙소에서 모여서 6시 미사를 드리러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도대체 하루에도 몇 번을 왕복하는지~~~~!! 오늘은 짐바브웨에서 미사를 집전할 차례다. 오늘도 페스티벌처럼 신나는 미사시간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움직임 없이 조용하고 침착한 분위기에서 미사가 거행되었다. 어제 우리 미사를 보고 나서 배려의 의미로 침착한 분위기로 미사를 집전한 건가 싶었다. 짐바브웨식의 미사도 좋았는데 말이지.


미사가 끝나자마자 나와 단짝은 오후에 시내 구경하면서 눈여겨 둔 와인과 치즈를 파는 Tchin-Cheese로 냉큼 달려갔다. 성당에서 광장으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1분만 더 걸어가면 보이는 곳이었는데 작고 모던한 느낌이 물씬 났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 한쪽 벽은 와인으로 가득했는데 친절한 중년의 사장님께서 와인 고르는데 도움을 주셨다. 포르투갈이 원산지이고 달지 않은 드라이한 레드와인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고 Monte Do Alem (Syrah Grenache) 와인을 골라주셨다. 카운터 쪽에는 다양한 치즈가 진열된 진열대가 있었는데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지!

안주로는 치즈 플래터(Plateau De Fromages)와 수박 치즈 샐러드(Salade Grecque; 수박 위에 치즈와 민트잎을 올려 무화과 소스를 뿌리고 루꼴라 샐러드를 곁들임)를 시켰다. 정말 와인도 너무 맛있고 치즈도 진짜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다른 치즈는 한 번씩은 다 먹어봤는데 장미꽃잎을 말려서 약간 모차렐라 식감이 나는 치즈와 버무려서 나온 게 있었는데 처음 먹어본 치즈라 좋았고 맛도 좋았다! 단짝은 한국 가면 만들어서 먹어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수박 위에 치즈를 올려서 먹는 것 또한 처음이었는데 생소하지만 나름 괜찮았다. 수박의 달달하고 시원함과 치즈의 고소함이 따로 놀 것 같은데 은근히 어울리는 맛이랄까.

우리는 딱히 막 검색하거나 알아보지도 않고 다니는데도 이렇게 좋은 식당을 또 찾게 되었다며 둘이 다니면 참 운이 좋다고 기분 좋은 수다를 떨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자니 어쩜 이렇게 평화로운 동네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가 없어서 그런지 하늘도 구름도 파랗고 선명하니 어디를 둘러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 더욱이 사람들도 친절하니 여기서 좀 더 머물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단짝도 똑같은 말을 했다. 현지에 녹아들어 순간을 즐기며 머물고 있는데 벌써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 8시 50분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서 계속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와인 한 잔 정도를 남기고 8시 40분에 나왔다. 숙소로 가면서 보이는 노을 진 저녁의 풍경도 참 아름다웠다.

둘 다 걸음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 속보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쓱 나타났다. 숙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담당자였다. 광장 쪽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하시고 먼저 나오셨다며 우리에게 '천천히 빨리 와'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정말 홀연히 사라지셨다. 우리도 걸음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바람과 같은 속도였다. 둘 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와인 한 잔 다 마시고 올걸 그랬다며 아쉬움을 남긴 채 숙소에 도착했고 워낙 저녁시간이 빠듯했던 탓에 다들 조금씩 늦게 도착했다.


모든 교구 청년들이 운동장에 모이고 나서 다 같이 또 국기를 들고 나라별로 줄 서서 퍼레이드처럼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타비라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아주고 인사해 주고 더러는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모두들 어쩜 그리 우호적이고 친절한지. 작은 도시라 이런 큰 행사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고 외지인들을 겪어본 적에 거의 없어서 그런 듯하다. 그러고 보니 타비라 주민분들 중에 동양인은 한 명도 못 봤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우리 청년 한 명이 지나가다가 현지에 사는 한국인을 만났다며! 이 동네에 유일한 한국인이신데 엄청 반가워하며 놀러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밤 행사는 광장에 있는 무대에서 각 나라별로 대표 한 명씩 무대에 밤 기도를 하고 봉사자가 영어로 신앙 체험을 이야기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번에도 같은 사회자가 3개 국어로 통역을 맡았다.


밤 행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단짝과 밤거리를 잠시 거닐었다. 다리 위에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가 있었는데 음색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좋고 너무 좋은 거라! 마지막에는 레이디 가가 주연 영화인 A star is born의 주제곡인 Shallow를 연주했는데 어쩜 그리 듣기 좋던지. 아름다운 밤에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으니 감사의 표시로 동전을 드렸다.

밤 12시에 소등이라 아쉬움을 한 스푼 남기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후딱 손빨래를 했다. 낮에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땀이 좀 나기에 그날그날 빨아두는 게 좋다. 세면대에서 샴푸나 바디샤워로 조물조물해서 빨아서 널어두면 다음 날 아침이면 잘 마른다. (어느 날은 피곤해서 빨래를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빨기도 함)

침낭에 몸을 기대어 잠자리에 들고 보니 또 새벽 1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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