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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Nov 10. 2023

본 대회 파견미사

철야 기도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푹 자고 일어났다. 이번 여정 중에서 제일 일찍 취침하지 않았나 싶다. 침낭을 열고 고개를 쏙 빼고 보니 모래 먼지는 여전했다. 단짝은 어제 나보다 더 일찍 잤는데 역시나 아주 푹 잤다고 한다. 아침으로 베이글을 꺼내 먹고 화장실에도 들르고 미리 침낭을 접어서 짐을 정리해 두었다. 


아침 9시에 마지막 공식 행사인 교황님과 함께 하는 파견미사가 시작되었다. 교구에서 여정 전에 미리 나눠 준 수신기를 켜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통역은 수도회 출신 신부님이 해 주셨다. 이 날 교황님 강론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세 가지로 말씀해 주셨다. '빛을 내십시오. 경청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라고 하셨다. 


<교황님 강론 번역본>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3-08/bring-god-s-radiant-smile-to-all-pope-tells-youth-at-wyd-mass.html


책이나 매스컴 등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돌아보는 때와 말씀이 만나는 순간 더 이상 뻔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내면을 탐구하다 보면 나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왜 그 두려움이 생겼는지 근원을 타고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전혀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말 안에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묵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순간만이 남았다. 바로 WYD 다음 개최지를 발표하는 것인데 교황님께서 직접 '서울'을 언급하시는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현장에서의 그 열기와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4년 뒤인 2027년 WYD는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다. 그리고 2025년은 안식년이라 로마에서 청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국가 순례자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러 왔다. 현지 방송국에서도 한국 순례자들에게 와서 인터뷰를 청했다. 나도 인터뷰에 응하긴 했는데 방송에는 안 나왔나 보다. 이런 경험을 다 해보다니!


설렘을 뒤로하고 이제 007 미션이 시작된다. 인파가 몰리기 전에 조별로 신속히 이동해서 공항에 오후 1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목표이다. 공항에 가면 전세버스가 와서 우리를 태우고 리스본 시내를 빠져나갈 예정이다. 150만 명의 순례자가 대이동을 시작하기에 대중교통수단은 이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 교구는 서둘러 짐을 챙겨 들고 출발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시간 반도 넘게 걸었던 것 같다. 드디어 보이는 리스본 공항 표지! 다들 공항에 도착했는데 완전 피곤 모드... 그래도 얼굴 표정만은 밝았다. 전세 버스를 타고 이제 리스본을 떠난다. 

이로써 2023년 WYD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 약 2주간의 교구대회와 본 대회는 내 인생에서 잊히지 않을 손꼽는 순간으로 남았다. 평소에도 여행을 오래가게 되면 그날 자기 전에 꼭 일기를 쓰는데 이번 WYD 여정 중에는 일기를 쓸 시간도 없이 바삐 돌아다닌 데다가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누우면 바로 잠이 들었다. 그날그날의 생생한 감정과 기억들이 모여 기록이 되는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사진을 보면 현지에서 느꼈던 기분이나 감정이 떠오른다. 2023년 WYD in 포르투갈 리스본에 참가한 모든 순례자들이 각자 삶의 여정에서도 씩씩하게 기쁘게 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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