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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01. 2019

감각을짓다7

작업노트/나비지붕집

-단독주택 / 2018년-

(월간 ‘전원 속의 내 집’ 2019년 1월호 기고 내용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한 글입니다.)


나비지붕으로 여러 번 접힌 지붕은 이웃한 박공지붕 집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얼핏 평지붕인 것 같은 납작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탄탄하고 야무진 이미지가 되기를 바랬다.

(사진:최지현 / 별도 표기 없는 사진은 글쓴이 촬영)

‘건축가님의 책에 담긴 신선한 디자인 시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메일. 첨부파일에는 새로운 집에 바라는 내용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젊은 부부는 직장 때문에 거처를 원주 혁신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동네에 머무를 요량이다. 그래서 공들여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건축학을 전공한 남편분은 라이프 스타일에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건축자재와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디자인 감각과 집요함은 건축가보다 더 건축가다운 면모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를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웠고,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존중해주려 애쓰셨다. 

단독주택 블록의 끝, 마을과 숲의 경계에 놓인 땅. 찍어낸 듯 늘어선 필지들 가운데 오직 이 땅만 일그러진 윤곽으로 여러 개의 도로에 접해 있다. 이런 곳이라면,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집의 앉음새를 고민하게 된다.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는 와중에, 건축주는 정사각형 윤곽의 평면을 제안하였다. 단순한 조형이 취향에 맞으며, 겸사 공사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건축가는, 사방으로 열린 땅에 여러 방향으로 동등한 얼굴을 세우는 것은 적절한 액션이라는, 그리고 구심력을 갖고 똘똘 뭉친 조형이라면 갓 태어난 마을에서 소박하지만 묵직한 선언이 될 수도 있겠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신도시 단독주택 단지에서는 지구단위계획지침에서는 경사지붕이라는 지붕의 형식과 기울기의 정도까지 정해져 있었다. 한편, 정사각형의 윤곽의 평면에서라면, 지붕 실루엣은 가급적 납작한 편이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비지붕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서둘러 만든 스터디 모형에서 ‘묵직한 본체 위에 살짝 접힌 지붕이 가볍게 올라타는’ 이미지가 도출되었다. 그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콘크리트 본체 위에 각형 강관 구조체가 올라타는, 주택에서는 드문 구조방식을 채택하였다. 

(사진:최지현 / 별도 표기 없는 사진은 글쓴이 촬영)

덕분에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틈이 생겼고, 그 틈은 고창(高窓/clerestory)이 되었다. 지붕의 아랫면, 2층의 천정은 조명기기나 센서 같은 별도의 요소가 전혀 붙지 않은, 순수한 백색의 면으로 처리되었다. 한편, 2층 가족실의 유리바닥은 시원하게 열린 느낌과 공간의 효율을 동시에 원하는 건축주의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통통한 평면의 갑갑함을 해소하면서 빛과 인기척을 이어주고 있다.

접힌 지붕과 고창, 그리고 유리바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비지붕집 고유의 공간을 연출한다. 얼핏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 안 분위기는 바깥 날씨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극적으로 변화한다. 

집안 깊숙이 들어온 햇살은 공간을 관통하고,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빚어낸다. 스며드는 빛, 통과하는 빛, 반사되는 빛. 각각 다른 사연을 지닌 다양한 빛들은 제각각 고유한 질감과 억양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물들인다. 

유리바닥을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쏟아졌던 햇살의 흐름은, 밤이 되면 1층에서 2층으로 솟구치는 인공 빛의 흐름으로 역전된다. 공간과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개별 공간의 점유 방식 또한 뒤바뀌게 된다. 낮에 햇살을 받아들이는 입구였던 고창은, 밤에는 내부의 빛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출구가 된다. 매개체가 된다.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은 벽, 기둥, 바닥, 계단, 지붕, 그리고 빛 같은, 기본적인 건축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집을 꿈꿀 때, 공간 그 자체의 분위기(atmosphere) 또한 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숫자로 나타나는 면적이나 공간의 효율성, 생활의 편리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가치. 막연히 세련되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스타일과는 다른, 건축 구성 원리의 핵심에 도전하는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안정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개인적인 취향을 적극 추구하는 건축주 부부의 개성 넘치는 삶. 그 삶을 담아내는 무난한 배경을 넘어, 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감을 주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불편한 드라마를 기대합니다.’ 건축주가 보낸 최초의 이메일에 쓰여 있던 문구처럼. 


다음 조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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