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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츤츤 Jul 25. 2019

이대의 추억

인생에서 특별했던 인연

“안녕하세요. 저는 멋쟁이 사자처럼 이화여대 A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합동아리 간의 조인 스터디 모임에서 당찬 목소리, 똑 부러지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친구. 그때만 해도 이 아이와의 인연이 그렇게 다이내믹하고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간간이 학교 동아리 모임, 해커톤 등의 행사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따로 연락을 하거나 그런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모든 학교의 각 동아리가 함께 참여하여 한 학기의 마무리를 짓는 행사 전체 해커톤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그 아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창업동아리 하신다고 그랬죠? 저 이번 학기에 창업수업 조교를 맡았는데 혹시 청강하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여대에 청강을 가도 되나 싶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교수님이 첫 수업부터 열정이 가득해서 과제를 내주셨는데 그걸 보고는 학생들이 반 이상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남학생 청강도 상관없다고 하셨고, 어쨌든 학생수를 채워서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학교라고 해도 남학생들이 꽤나 청강을 많이 온다고 그랬다. 아, 그 타노스의 핑거스냅급 과제는 창업 관련 책 하나를 읽고 독후감 쓰기였다고 한다.


학내에서 창업동아리를 만들었던 나는 사실 팀을 만들긴 했지만 창업에 대해 정말 1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창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녀의 정보는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교수가 창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실전 파라고 했기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상황에서 여대에 청강을 가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다른 마음이 있어 가는 것도 아니고 배움의 전당에 배우러 가는 것인데. 그래서 약간의 부담감과 긴장감에 두리번거리며 나는 2호선 이화여대 역에서 내렸다.


온통 여자 사람으로 가득한 이곳, 심지어 지하철역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화장품 가게의 간판만 보고도 이 곳이 여대 앞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좁은 인도에 빼곡하게 들어찬 여학생들 그리고 빈 공간을 메우는 늦여름의 열기가 가득한 얕은 언덕을 지나치자 하얀색 대리석이 가득한 너른 광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녹색의 학교 마크가 박힌 간판과 문 앞에 있는 경비 아저씨 눈치를 보며 살며시 학교로 들어갔다. 마치 땅이 갈라진듯한 공간, 그리고 그 땅 밑에 들어있는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SF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공간이라고 할까 신기한 건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ECC라는 건물이었다. 나는 그 지하기지로 잠입했고 청강하기로 한 강의실을 찾았다.


약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들 그렇게 새로운 일은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중학교 시절 여자반에 심부름을 가던 때가 생각나는 느낌이었다. 조금 헤맨 끝에 강의실을 찾아냈고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셨네요?”


“네, 좀 신기하고 어색하네요.”


첫걸음이 어려웠지 나는 그렇게 매주 창업수업을 듣기 위해 이화여대로 향했다.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창업 아이템을 발전시키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팀 과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각자의 아이템을 발표하고 3-4명이 팀을 이루는 팀 매칭 시간이 있었다. A도 자신이 기존에 참여하고 있던 창업팀의 아이디어를 발표했었는데 갑자기 내 팀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알고 보니 자신의 팀이 와해될 위기에 처했으며 아이디어보단 팀원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했다.


우린 그렇게 팀이 되었고, 나는 창업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 위해 그리고 공동대표인 A와의 회의를 위해 다음 학기에도 이화여대에서 창업 수업을 듣게 되었다. A 덕분에 알게 되었던 또 다른 친구인 B도 다른 수업의 조교로 있어서 그 수업도 청강을 듣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또 알게 된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도 하고 세미나도 함께 참여해 상금도 받는 등 참 기분 좋은 기억들을 만들었었다. 그렇게 그다음 학기도 끝이 났고 우린 종강 연을 마친 후 우리끼리 이태원의 한 맥주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우리의 인연을 추억하며.


A와 나는 그 이후 열심히 창업팀을 꾸려나가다가 결국 각자의 경험 부족과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각자 취업의 길로 나섰다. 그 이후에도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고 있지만 각자의 길에서 바쁘게 지내느라, 그리고 사실 더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은 언제나 같지만.


가끔 보이는 페이스북 소식을 통해 A가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며 꽤 재밌게 지내는 것 같은 내용을 보면 기분이 좋고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인연이란 결국 지나가고 또 만나고 지나가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결이 맞는 사람, 그리고 잠시나마 생각을 함께하고 행동을 함께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경험을 함께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뿌듯한 일이다. 우연한 계기로 아주 짧게 다녔던 이화여대였지만 정말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은 왜였을까.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였을까. 이유가 어쨌든 간에 그곳에서의 순간을 오롯이 즐겨냈고 좋은 인연을 만들었고 즐거웠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경험과 시도에 대한 두려움,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내 마음에 집중해서 살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어디서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내일의 인연은 또 어떻게 나를 어디로 이끌어줄까. 그리고 나는 또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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