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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츤츤 Jun 08. 2020

그때는 몰랐지

2020년에 쓰는 2015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감상/가상 기행문

지난 주말 저녁, 여자친구와 최근 화제가 된 ‘깡’ 그리고 유재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우리가 무한도전을 아주 열성적으로 좋아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엄청난 고생을 하고 평창에서 열렸던 가요제에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여자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 들으니 마치 내가 그 무대를 보고 온 것 마냥 생동감이 넘쳤다. 결국 우린 함께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공연실황을 담은 에피소드(442화)를 찾아 결제를 했고 다시보기 버튼을 클릭했다. 무한도전의 BGM을 들으니 아주 오랜만에 그 시절의 향수가 떠올랐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주말 저녁을 보내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는 원래 무도 가요제에 갈 생각은 없었다. 원래 친언니와 함께 강원도로 2박 3일의 짧은 내일로 기차 여행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때마침 재미있게 보고 있던 무한도전에서 평창에서 가요제를 열었고 친언니와 함께 고민한 끝에 준비했던 여행을 포기하고 평창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꽤 빨리 평창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2-30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그 뒤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길바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이러한 기다림이 익숙한 사람들은 침낭, 식량 등 노숙용품을 많이 가져왔는데 이런 적이 처음인 여자친구는 언니와 함께 여행가는 정도로 과자 같은 먹을 것만 많이 챙겨갔다. 워낙 뭐가 없다보니 사람들은 각자가 가져온 물품을 서로 나누었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고생하다보니 생긴 연대의식 같은 거였나보다.


무도 가요제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8월이었으나 밤에는 추워서 얼어죽을뻔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였다. 그만큼 고도가 높아서 아무리 낮에 더워도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 그래도 다행인게 과자를 나눠주었던 옆사람이 친절하게도 침낭을 빌려주어서 성공적인 노숙을 할 수 있었다고.


가장 힘들었던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까지 이어진 줄은 무려 1시간 반이었는데 참느라 정말 죽을뻔했다고 했다. 그래서 볼일을 보고 싶을때 줄을 서는게 아니라 그냥 일단 서야했다고. (정말 사람 많은 곳은 이런 점이 참 어렵다 하하;;;)


그래도 다행인건 처음에는 정말 길바닥에 기다리는 사람만 있고 아무 것도 없었는데 주변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푸드트럭, 야광용품을 파는 상인들을 비롯해 정말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어서 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정말 거기서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노숙을 하면서까지 쟁취한 앞자리에서 그녀는 무한도전에서도 역대급 게스트, 역대급 음원, 역대급 방송으로 기억되는 최고 가요제 2015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정말 제대로 즐겼다고 했다. (앞자리에 앉다보니 혹시나 카메라에 나올까봐 화장실 세면대에서 기어코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ㅋㅋ) 지드래곤, 아이유, 자이언티, 혁오, 윤상, 박진영에 스페셜 게스트 효린, 이적 까지 총출동했던 무대였으니 정말 역대급이다. 함께 다시보기를 하면서 새삼스레 느낀 거지만 정말 무대, 조명, 효과, 노래 모두 정말 최고였다. 정말 기다린 보람이 있었을 것 같았다.





※ 가요제 가수 & 무대 리스트

1. 황태지(황광희 & GD X TAEYANG) - 맙소사

2. 이유 갓지(God G) 않은 이유(박명수 & 아이유) - 레옹

3. 으 뜨거따시(하하 & 자이언티) - 스폰서

4. 상주나(정준하 & 윤상) - My Life(feat. 효린)

5. 댄싱게놈(유재석 & 박진영) - I'm so sexy

6. 오대천왕(정형돈 & 혁오) - 멋진 헛간


축하공연

1. 박명수 & IU & GD - 바람났어

2. 하하 - 키 작은 꼬마 이야기

3. 유재석 & 이적 - 말하는대로



본 방송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그 때 당시의 현장 분위기와 상황들을 여자친구가 들려주니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왕관모양의 빅뱅 응원봉을 든 팬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본방송을 위해서 실제로는 녹음을 위해 오대천왕(정형돈 x 혁오)의 무대가 몇 번 더 진행되었었다고 한다. 댄싱게놈(유재석 x 박진영)의 무대는 여자친구가 별로라고 느껴서 그랬는지 반응이 약간 조용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사실 다른 무대들이 워낙 효과도 화려하고 음원도 좋다보니 상대적으로 댄스만으로 승부를 보려했던 무대가 뭍힌 느낌이 있어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무대인 오대천왕(정형돈 x 혁오)의 무대는 비가 와서 그랬는지 사운드가 문제였는지 보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 음원으로 들어보니 너무 좋아서 맨날 듣고 다녔다고.


혁오는 사실 무한도전 이전만 하더라도 떠오르는 밴드였는데 무한도전 이후 대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 정도로 당시의 무한도전의 인기는 말 그대로 황금기이자 절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던 콘텐츠가 바로 가요제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 무대를 보러가는지 신기하고 궁금하고 부러웠는데 바로 내 여자친구가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신기. 부럽. 오오.)


그러나 고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고 한다. 공연은 당연히 밤 늦게 끝났고 버스터미널 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끊긴지 오래였다. 아주 많은 차량들이 길 위에서 주차장을 만들동안 뚜벅이였던 여자친구는 언니와 함께 지친 몸을 이끌고 산길을 걸어서 내려오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정말 다시는 이렇게 공연을 보러오고 싶지 않다고 후회하면서 말이다ㅎㅎ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더욱 장관이었던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다들 터미널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냥 평온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의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여행기는 끝이났다.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한도전을 보고나니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이 무대가 마지막 무도 가요제가 될줄은(방송에서도 2017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끝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무한도전이 종영할줄은. 그리고 코로나19시대가 온 지금, 사람들과 부대끼기 이토록 어려워질줄은.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텅 빈 무대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함께 불렀던 ‘말하는대로’ 가 관객들이 꽉 찬 2015년의 무대에서 울려퍼졌고 2020년에 다시 그 영상을 보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한도전 10주년 기념 다시 듣고 싶은 곡 1위에 뽑혔기 때문에 그만큼 감동적인 무대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담담하게 희망을 믿고 노래하는 이 우직한 응원의 노래가 큰 위로로 다가왔다.


눈물이 났던 "말하는대로" 공연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을거라는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믿고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참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힘들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일으켜세웠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마주한 이 노래가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터져나온 눈물이 내 안에 쌓인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내가 덤덤히 견디고 있던 것들이 꽤 묵직했었나보다.


인생은 참 쉽지 않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문제는 늘 찾아오고 위기는 한꺼번에 온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마치 마블영화에 나오는 타노스가 핑거스냅으로 세상의 절반을 쓸어버리듯 감염병 대유행의 시대에 살게될 줄. 다들 힘들다고 죽겠다고 한다. 나도 그럴뻔 했고 또 앞으로 나에게 그러한 위기가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욱 더 심해진 안개가 가득 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시대, 그 누구도 먼저 가본 적 없는 전 세계적 위기의 시대다. 그래서 믿고 의지해야 하는건 이 시대를 오롯이 버텨내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이웃이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의지하며 믿어야 하는 시대에 살게된 것이다.


“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맘 먹은 대로, 될 수 있다고.”


노랫말처럼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믿는 또 다른 누군가를 믿으며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또 살아냈으면 좋겠다. 결국 말하는대로 우린 살아갈테니까.




사진 및 자료출처 : 여자친구,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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