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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츤츤 Jul 01. 2020

<다큐 3일>만으론 우리를 설명할 수 없다

괜찮아마을 주민이 말하는 괜찮아마을

2020년 6월 5일 금요일 밤, 내가 살고 있는 “괜찮아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KBS 다큐멘터리 3일”이 공중파 방송 전파를 탔다. 괜찮아마을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TV를 보기도 했고 집에서 조용히 보기도 했다. 자기 얼굴이 TV에 나오니 재밌어하고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인스타에 인증샷을 올린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집에서 조용히 혼자 보는 쪽이었는데 퇴근 후 쉬고 싶기도 했고 사실 나는 이런 것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편이다. (TV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는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그 흔한 인증샷도 올리지 않았고, 홍보도 하지 않았다.


공중파의 위력은 역시 엄청나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같이 했던 분에게 우연히 방송을 봤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왜 나온다고 얘기를 안 해줬니. 맨 마지막 10분밖에 못 봤다.” 고 부모님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사실 나는 카메라 감독님들과 만난 적도 별로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장면을 찾는 게 힘들 정도였다. 불필요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서 사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러는 거 보면 나는 관종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본방송을 보고 나니 뭔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그런가 정신이 없고 뭔가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등장했던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도 이 정도인데 다른 시청자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정말 이 방송을 보고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여분 정도의 방송 분량에 3일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담아내야 하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우연히 벌어졌던 사건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걱정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기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우연히 일어난 일들도 우리의 일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카메라 감독님들이 우리에게 “꼭 담아줬으면 하는 게 있나요?”라고 물어보았던 질문에 답했던 것들이 왠지 잘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방송에서 담아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우리의 진짜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다시 보기 링크 : KBS 다큐멘터리 3일 [실패해도 괜찮아 - 목포 괜찮아마을 72시간]




미디어에 비친 괜찮아마을


다큐 3일에는 괜찮아]마을을 만든 기획사 “공장공장”의 하루하루가 주로 담겼다. 괜찮아마을에 남은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공장공장”에 취업했고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일들이 공장공장에서 일어나며 마을에 대한 기여도도 상당하다. 그들이 있기에 괜찮아마을 이라는 이름과 브랜드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분량은 목포에 남아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 채식 식당 “최소 한끼”, 고깃집/점심뷔페 “세종집”, 스피크이지 바 “목포의 상실” 등이 채웠다.


사실 괜찮아마을은 예전부터 여러 번 뉴스에도 나가고 기사에도 나간 적이 있다. 하나같이 똑같은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른 건 없었던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연고도 없는 목포에 모여들었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청년들이 서로 공감하고 위로했다.  

    주소지를 바꾸고 창업 혹은 취업을 하며 목포에 남았다. 


그렇게 우린 청년들의 지방살이 정착의 성공적 모델로, 마냥 행복하기만 한 해피엔딩 스토리로 보였다. 괜찮아마을이 끝난 후 비슷한 모델인 한 달 살기 프로그램들이 지방 곳곳에서 유행처럼 번졌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유행했던 한 달 살기 프로그램들의 실질 청년 정착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 정착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정책의 의미는 청년들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다큐 3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시청자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을 선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뭔가 공감이 잘 안되거나 이해가 어렵거나 논란이 될 만한 건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 3일은 다큐라기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운 느낌이다. 라이트 다큐/예능 같은 느낌이랄까. (시청률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큐멘터리 중에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도 딱히 없고 기억나는 장면은 콩고 왕자 조나단뿐이니까.) 

인간극장 콩고 왕자 조나단. 요즘 유튜브도 한다.


방송에 비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며 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지방에 내려가 모여 사는 청년들이 결국 무언가를 해내며 결혼도 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Happily ever after. 와우. 디즈니 만화 영화 같다. 실제 삶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려나간 장면들


3일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걸 4-50 분 정도에 담으려고 하니 많은 장면들이 잘려나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설명이 필요한 장면이 잘려서 들어갔거나 들어갔으면 하는 소중한 일들도 통편집이 되기도 했다.


괜찮아마을 1기 6주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다행이네요>의 (김) 송미 감독이 만든 괜찮아마을 1주년 기념 영상 <서울로 보내는 편지> 도 많은 장면들이 잘린 채 인용되었다. 1주년 기념 영상 상영회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다큐 3일에 짧게 삽입된 장면들만으로 우리의 생각, 마음, 고민들을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영화 <다행이네요>를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 지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은데 현재 상영관도 없고 VOD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아쉬운 대로 예고편 링크를 남긴다.)


대신 <서울로 보내는 편지>는 김송미 감독의 개인 Youtube 채널 “낯설게 하기”에 공개되어 있으니 방송에서 끊어진 장면이 궁금하다면 검색해보거나 이 글 아래에 있는 링크를 통해 한 번 봐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영상들도 감각적이고 감동적이고 공감이 가는 것들이 많다. 아마 당신도 이 영상을 통해 김송미라는 사람에게 흠뻑 빠져들지도 모른다.


<다행이네요>는 2019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선정되었다. 덕분에 영화제에 배우로 참여하는 뜻밖의 영광을 얻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요리를 만들어서 먹으며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눴던 것, 동네를 산책하고 함께 운동을 한 것, 별을 보러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안개가 짙게 껴 있어서 별 소득 없이 내려와 바다로 가서 함께 음악을 들으며 목포대교 야경을 본 것 그리고 친구들 각자의 생각이 담긴 인터뷰 등등 많은 것들이 담기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리얼한 라이프는 사라지고, 평소에 잘 있지 않은 일들(부모님의 깜짝 방문, 괜찮아마을 1주년 기념행사, 친구의 결혼식 사전 파티, 갑자기 찾아온 친구들의 쉼표 같은 이야기)이 연속해서 나왔다. 그 장면이 우리를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좀 부족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삶보다는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가끔 도시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시의 삶보다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 되는 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동네 친구들이 있다는 거니까. 그야말로 비빌 언덕이 생겼다는 거다.



어떤 게 우리의 진짜 모습일까


외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부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고 있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친구들이 지척에 있으니 말이다. 주머니 사정은 뭐 어딜 가나 부족하다고 생각할 테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다큐 3일 작가 분들이 사전 인터뷰를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너무 부럽다고 얘기했었다. (나는 그 말에 다소 시큰둥해버렸고 “괜찮은 일자리가 해결이 되어야”라고 전제를 달았었다.)


삶은 밖에서 보면 희극, 안에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백조는 수면 위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물속에서는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다. 우리의 괜찮아마을 속 삶도 이것과 닮아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디에 사는 그 누구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벌이를 걱정한다. 내 삶은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 각자 그 무게를 지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다는 걸 알기에 서로 도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점이 다른 점인 것 같다. 뭔가 하고 싶으면 함께 만들어 갈 각양각색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것도 정말 큰 강점이다.


괜찮은 거주공간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끼리 힘을 합쳐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기도 한다. 괜찮은 사업장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사업을 이어나가고 이 곳에서 친구들과 잘 살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그저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각자가 하고 싶은 것들을 또 시도한다. 서울과 달리 지방, 바로 이 곳 목포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가 스스로 이것저것을 만들고 실험한다. 영화 모임, 운동 모임, 글쓰기 모임, 뜨개질 모임에 최근에는 예술 작품 전시회 <욕구불만>도 열었다. 그리고 그 전시회를 했던 과정을 담은 책도 출판하기로 했다. 멋진 친구들이 모여 멋지고 느낌 있는 것들을 해낸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다투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서툴러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돕고 응원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우리를 끈끈하게 만들고 또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 삶을 지탱해 나가는 것이 힘들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조만간 무언가 활동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간다. 그래서 친구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나 기획이 들려와도 선뜻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도왔다. 친구들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나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우린 또 서로 밀고 끌고 도와줄 거니까.


‘결이 맞다.’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할까. 물론 모두가 결이 맞을 수는 없고 아직까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냉랭한 관계도 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문득 내가 어릴 때 국내 문제를 다룬 뉴스를 보다가 이민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해외라고 다를 거 같아? 뉴스에 안 보여서 그렇지 다 똑같아.”)


방송에 나온 장면들에는 치열함, 고민들 보다는 행복한 모습이 더 보였기에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몰라줄까 봐 그랬나 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신경을 끄려고 노력해왔는데 막상 이 방송을 보고 친구들의 방송 평을 듣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방송에 담긴 모습이 행복하다는 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지표인 것 같다. 내가 예전에 내 책 제목으로 썼던 <이제 좀 사는 거 같다>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터져도 다시 일어나고 또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내는 걸 보면 말이다. (내 책 <이제 좀 사는 거 같다> 는 아크앤북 을지로 점에서 판매중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 머나먼 목포까지 와서 이렇게 애를 쓰며 살아가는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는 연습을 우리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살아가려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부단히 애쓰는 것 같다. 그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나’ 자신으로써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 괜찮아마을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앞으로 매주 Youtube 괜마 TV를 통해 업로드된다고 한다.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



참고 링크

김송미 감독의 Youtube 채널 <낯설게하기>
괜찮아마을 일상 Youtube 채널 <괜마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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