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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운 Dec 25. 2022

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2022)

이준형 글│빅피시

30권의 책을, 그것도 철학가들의 방대한 사상을 한 권으로 옮겨놓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다. 한 명의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다루는 한 챕터가 너무 짧아서 깊은 이해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지도 않았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어렵고 재미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명의 철학자를 단 한 권의 책으로 파악하고 싶다는 게 내 욕심이었던 듯싶다. 
 ★3/5


솔직히 말하면 몇 명의 철학자들은 읽어도 그의 개념에 대해 남는 게 없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게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거나 나의 사고를 확장시켰던 내용들을 위주로 정리해보려 한다.




<01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사유하기를 멈추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p.16

그렇다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중범죄자의 재판에 어떤 특이점이 있었기에 아렌트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가 이 재판에 주목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이히만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면 지극히 일반적인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좋은 가장이었으며, 탁월한 행정 능력을 보여준 공무원이었다. 그는 재판 내내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그저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고 강변했다. 물론 그 '업무'의 결과가 수백만 명의 죄 없는 목숨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볼거리

악의 평범성에서 가장 생각해봐야 할 주제. 우리는 그것이 도덕적이지 못하더라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할까? 도덕성과 할 일의 괴리가 생기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를 제치고 도덕성을 택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과연 아이히만이 나쁜 것이며,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 같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p.21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흔들리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볼거리

우리는 어떤 사유를 통해 아이히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이 영향을 미칠 '사람들'에 대한 통찰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모든 일은 사람을 위한 일이고 모든 일 저편 너머에 사람이 존재한다. 
다른 말인데, 환자를 비하하고 의약품을 반출한 간호사가 논란이 되었다.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 무지의 평범성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무슨 역할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사람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02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삶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p.29

그가 말하는 초인은 자신을 초월한 자이며, 스스로를 자기 안에 가두지 않고 자신의 밖에서 바라볼 줄 아는 자이다. 또한 기존의 해로운 전통과 가치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p.30

자기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나답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답게 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니체는 '창조하는 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니체가 보기에 내가 원하는 나로 산다는 건 결국 창조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린 창조자가 되기 위해 기존의 가치 목록을 뒤집고 이를 새로운 가치 목록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거리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 위버멘쉬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을 뜻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며 살아야 함을 잊지 말자.




07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의 권리 옹호》 1792│여성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쓴 1792년작


p.91

총 13장으로 구성된 《여성의 권리 옹호》는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분석하고, 이러한 편견이 생겨난 이유를 그 시대 작가들의 사유와 여성의 일상을 바탕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그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p.93

참고로 루소는 당대 가장 급진적인 계몽철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고 남성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태어났다'거나 '여성은 비이성적인 본성 때문에 정치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10 르네 데카르트 《성찰》 1641│시대의 변화를 포착한 근대 철학의 아버지


p.128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은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급진적인 의심 혹은 회의의 방식을 우리는 '방법론적 회의' 또는 '데카르트적 회의'라고 부른다.


p.129

데카르트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명제를 찾아낸다. '코기토' 명제라고 알려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생각해 볼거리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한다. 딱 한 가지 의심하지 않을 게 있다면 그것은 '나'의 존재라고.
하지만 우리가 통 속의 뇌라면? 잘 설계된 꿈이라면? 나는 과연 실존하는가?




15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1861│더 가치 있는 쾌락이란 무엇인가?


p.186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저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명제가 탄생한 것이다.


p.190

공리주의란 어떤 행동이든 쾌락이나 행복을 높일 수 있다면 옳은 것으로 판단하고, 이와는 반대로 고통과 불행을 높이면 옳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는 사상을 말한다.


p.194

개개인이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은 개인의 불행은 물론, 사회 전체의 불행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고민과 존중이 부족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볼거리

사회에서 획일화되는 인간상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 준다면 개개인의 행복이 분명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음'을 주어야 한다. 정해진 길에서 어긋나도 서로의 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17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경제 발전,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나


p.212

중장년 시기에 쓴 《국부론》에서는 이기심이 행위의 핵심 동기로 전개된다.


p.215

그가 보기에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생각 덕분'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19│누구보다 철학에 긍정적 영향을 준 염세주의 철학자


p.248

그의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동서양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p.253

그럼 대체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걸까? 쇼펜하우어는 그 이유를 우리가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p.253

'욕망은 무한하지만 충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고통받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이룰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만, 이는 잠시 잠깐의 휴식에 불과하다. 우리는 곧 심각한 권태의 상태에 빠져들거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시 내달리게 된다. 인간의 삶은 그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을 뿐이다.


p.254

쇼펜하우어는 서둘러 두 번째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금욕 생활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이를 억제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 이런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아무런 기쁨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바다와 같이 고요한 영혼의 행복,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삶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거리

욕망이 없으면 바다와 같이 고요한 영혼의 행복이 올까?
나는 오히려 욕망이 없으면 삶은 권태의 나락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인간은 욕망하기 때문에 그 욕망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달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번 충족된 욕망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고통만을 줄 뿐이다. 하지만 욕망을 하고 그 욕망을 성취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을 즐기고 다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기쁘지 않을까?




23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인간 존재의 실존적 모습을 조망하기 위한 한 권의 책


p.286

그렇다면 어떠한 존재자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묻고 이해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는 지구상의 존재자 중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를 묻고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 등을 고민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진정한 자신을 확인해 나가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존재자를 '현존재(Da-Sein)'라 일컬으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다'고 강조한다.


p.287

물론 인간이 모두 자신의 존재를 물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 인간은 그러한 질문 없는 '비본래적 삶'을 산다. 비본래적 삶이란 타인 또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p.287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학벌과 직장만 갈구하는 삶, 남들이 정해놓은 삶의 궤적을 따라 의심하지 않고 사는 삶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혹은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무사한 것에만 안도하거나 남을 따라 행동 또는 사고하는 경우도 많다.


@생각해 볼거리

나는 한 때 생각이 많은 내가 싫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와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하는 빈도가 적어졌고 그로 인해 쾌적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주어진 대로'살아가지 않고 나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정한 본래적 삶 아닐까? 가끔씩은 나와 세상에 대해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또 하나. 여기서 말하는 비본래적 삶이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지 않고 남들이 선망하는 삶만 추구하다가 불행에 빠지게 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지 생각하는 것이 본래적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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