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후 간직하고 싶은 단 하나의 행복한 추억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원더풀 라이프>는 줄곧 겨울향이 날 때가 되면 <러브레터>와 함께 생각나는 영화다. 오래전 개봉했던 이 영화를 노트북으로 보았는데, 판타지와 현실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이 영화는 현실에 발을 완전히 딛고 있는 그의 현재와는 확연히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가족, 관계들에 관한 영화의 전신이면서도 무엇보다 '빛의 영화'같았다. 영화에서 늦은 밤, 아라타가 복도를 걷다가 천장에 뚫려있는 작은 네모난 창을 통해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의 빛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 나는 극장 재개봉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사람들이 죽고나서 '저 세상'으로 가기 전 일주일간 머무는 '림보'라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너무나 뻔뻔한 태도로 그 안에서 태연하게 이어지는 삶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이 영화는 그곳에 찾아온 이들에게,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하는 관객들에게 동시에 묻는다. 저세상으로 갈때 간직하고 싶은 단 하나의 행복한 추억이 무엇입니까. 거창한 사건은 이상하게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스물 한 살, 문을 열고 들어온 나와 눈이 마주친 첫사랑이 나를 안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왔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림보에 들어온 이들도 그렇다. 3일 동안 유일하게 간직해야 할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뒤지는 그들은 태어난지 5개월이 되던 때의 공기랄지, 나를 예뻐해주던 오빠 앞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던 저녁, 구름을 가르며 하늘을 날던 풍경, 여름날 버스 창문으로 불어왔던 바람같은 것들을 고른다. 그것들은 길든 짧든 인생에서 돋보이는 조각들은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기억들을, 기억들만큼이나 소박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평생 안고 갈 기억을 선택한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데 누구도 소란을 떨지 않는다. 그 과정도 마치 일상의 또 다른 조각들인 것처럼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 매 순간은 내가 죽고나서 떠올릴 수도 있을 기억의 후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죽어본 적도 없고 이제야 서른을 넘기는 중이지만 없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사사로운 그런 작은 기억들이 결국 감정의 허기를 채우고 있음을 문득 떠올린다. "내 행복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50년이 흘렀는데,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 아라타의 대사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일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는 남은 3일간 최선을 다해 그들의 행복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삶을 완성한 한 사람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그 과정은 마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같기도 한데, 이 태도는 감독이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그의 세계관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종일관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영화는 끝내 죽음을 통해 생을 이야기한다. 내가 누군가의 마지막 기억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찰나일수도 있고 그 사건은 나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는 것에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긴다. 아라타는 마지막에 우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 기억의 중심엔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