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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 Cow Society Oct 06. 2021

고스트 스토리

공포가 슬픔이 되는 시간

죽은 자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는 존재인가? 공교롭게도 사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들을 연달아 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원더풀 라이프>에서 ‘림보’라는 가상 공간을 만들어, 삶이 끝난 사람들이 저 세상으로 가기 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찾게 한다. 그래야만 진짜 죽을 수 있다. 기억을 고르지 못한 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머무르게 된다. 혹은,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기 위하여 자의로 완전히 죽지 않기도 한다. 한편,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는 한결 잔인한 방식으로 삶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묘사한다. 살아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는지가 죽은 후의 '존재감'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인간을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에 비유한다.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살면서 사랑 받지 못한 존재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자신의 전구에 빛을 밝혀줄 사람이 없다. 빛이 오래도록 켜지지 않으면 그들은 정말로 사라진다. 이승에서 죽을 때보다 더 두려운 표정으로 그들은 그 순간을 맞이한다.


위 두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내가 누군가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일 테다. 그리고 먼저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이렇게 죽음의 공포란 오로지 산 자만의 몫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나에게 <고스트 스토리>는 죽은 자의 시간 속에 들어가 공포의 실체를 온전히 통과하게 만들었다.


교통사고로 고스트가 된 C는 연인이었던 M이 떠난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일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은 공간에서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력하게 닳아가며 다시 시작점인 M의 집으로 돌아온 C는 M이 집을 떠나기 전 벽 틈에 남긴 쪽지를 보려 했음을 기억해낸다. 그러나 쪽지를 열어보자마자 C는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그 쪽지의 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나는 M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고스트는 <원더풀 라이프>의 림보에 머무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살지도 완전히 죽지도 않은 존재, 아직 죽을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고스트가 거쳐온 시간의 체감은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2 4화 [White Christmas]에서 가능하다. 이 세계에서는 자신의 두뇌를 쿠키라는 AI 시스템에 복제해 '가상의 나’를 만들고 일종의 진화된 스마트홈 시스템 역할을 맡긴다. 문제는 자신이 복제된 허상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가상의 나’는 '나'로서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느닷없이 작은 사각 프레임에 갇혀 업무를 강요받자 거부하는 '가상의 나'에게 시간 조작 고문을 한다. 현실에서의 1초를 쿠키 안에서 몇 개월, 몇 시간으로 늘리면 '가상의 '나'는 '고스트'같은 존재가 된다. 무한한 시간 속에 홀로 남겨져 모든 관계가 사라진 상태. 죽을 수도 없고 존재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를, 왜 기다리는지 잊어버린 고스트들이 결국 사라져갈 때도 C는 그럼에도 끈질기게 존재해냈다. M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혹은 M도 C를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시간 안에 머무를 수 있다. 그것만이 그를 존재하게 한다. 그래서 C가 사라지는 순간 즉, M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단절되었음을 알아차린 순간 그가 견딘 시간의 무게가 비로소 산 자의 몫으로 밀려온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느낀 공포의 정체는 다름아닌 쓸쓸함이었다. 슬픔이 밀려올 두려움에 대한 공포였다.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잊히지 않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상상력은 산 자들의 외로움의 산물일까. 이토록 인간의 유약한 본능은 가늠할 수 없는 시공간 속에서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며, 유령처럼 그 자리에 남아 떠돈다. 결국 현재의 시간을 떠도는 것은 기억되고자 하는 우리들의 원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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