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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금요일 Feb 07. 2019

물건에 관하여 - 5

고벽돌, 지난 주에 생산된 빈티지


나는 새것들에 대한 애호가 별로 없는 편이다. 특별히 빈티지나 엔틱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들에 좀 더 눈길이 간다는 건데, 아마 새것들을 새것들답게 관리하지 못해서 그럴 거다. 보통 후자의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의 연식을 특별히 관리하는 재미까지도 사랑하던데,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새것에 비해 낡은 것들은 편안함을 주는데, 어떤 흔적들이나 상처들까지도 모두 자기의 역사로 껴안아버려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 정도의 상상을 하면서 나는 즐거워한다. 오래된 물건이라는 이유로 늘 곁에 두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구는 나의 태도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낡은 것들은 새것에 비해 관대하다. 나같이 게으른 이의 사랑까지도 포용할 만큼 관대하다. 똑같은 비중의 아름다움을 놓고 새것과 빈티지가 겨루고 있다면 나는 그 관대한 포용력 때문에 빈티지 쪽에 한 표를 행사하겠다. 그리하여 이미 그것이 갖고 있는 흔적들 안에 슬쩍 끼어 들어가 나라는 존재까지도 그것의 역사에 기대어 보겠다. 물론 이것은 동일한 가격일 때의 얘기다. 빈티지 애호가들은 가격을 불문하던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언젠가 책장이 하나 필요하여 남편과 이 궁리 저 궁리를 하게 되었다. 선반으로 쓸 합판은 있으니 지지할 기둥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남편과 내가 합이 맞은 기둥의 재료는 붉은색 고벽돌이었다. 고벽돌을 취급하는 업체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거기서 슬프고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처럼 고벽돌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게 되자 이제는 일단 벽돌을 쌓았다가 며칠 뒤 허물어버린다는 거다. 그러면 이제 그 벽돌에는 고벽돌이라는 레테르가 붙여진다는 거다. 못해도 백년에서 수백 년 쯤 지난 건물 외벽에서 떼어낸(것으로 믿어) 그것들을 자기 집의 외장재로 삼은 이들에게는 혈압이 오를 일이다. 우리처럼 책이라는 물질성과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아 그저 소소한 멋이나 부려볼 생각으로 고벽돌을 찾는 경우에도 조금쯤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 새 벽돌을 쌓으면 다음 주에는 고벽돌이 되어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주문하면 배송되는 빈티지의 시대인 셈이다. 그 빈티지들이 우리에게 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빈티지가 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빈티지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일 뿐이다.



벽돌의 상처란, 장수의 상흔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비와 바람이 일으키는 자연의 변덕들과 맞서 싸우느라 생긴 흔적들이므로 그것은 자기의 역사로부터 자기의 내구성과 견고함을 증명해내는 방법인 거다. 스토리야 만들려고 작정만 한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파리의 콩코드 광장 바닥에는 네모난 정사각형의 돌이 부채꼴 모양으로 깔려있다. 그것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부술 때 나왔던 돌들이다. 구체제를 들이받기로 작정한 이들이 바스티유 감옥이라고 그냥 두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우겨볼 수도 있는 거다. 콩코드 광장을 걷고 있으면 그때의 그 함성 위를 걷는 거라고. 세상을 뒤엎어버린 그 목소리 위에서 느긋느긋 산책이라는 걸 하고 있는 거라고. 파리의 콩코드 광장은 물질이 아니라 함성으로 도포되어 있는 거라고.



결국 나와 남편은 지난주에 생산되었을 고벽돌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그 벽돌들도 어쨌든 이런 요망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탄생하였으니 나름대로는 사연 있는 벽돌이 된 셈이다. 이제는 기다림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는 어떤 빈티지 물건들, 그 물건들에게는 죄가 없다. 사람은 안티 에이징의 시대에, 물건은 스피드 에이징의 시대에 살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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