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생각보다 기쁘지 않은
제목 그대로 운 좋게 연봉을 800만원 올렸다. 이제 2년밖에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많이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회사에서는 첫 연봉 협상이었고 또 게다가 SI 기업에서 기획 업무였기에 어느 것을 봐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올렸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 물론 일은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고 한 해동안 힘들기도 엄청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연말인 지금 조금 지쳤다.
그래서 연봉이 올라 기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기쁘지도 않다. 물론 안 오른 것보다는 낫고 이 정도 오르지 않았다면 일하기 싫어졌을 수 있다. 직장 생활 직장과 근로자의 입장 차이라는 게 참 오묘하다. 다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직장의 입장은 다르다. 고정비를 줄이고 싶어 할 것이고 딱 계속 다니게 할 만큼만 올려주고 싶을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는 뭐 싫으면 나가라 했을 것이다. 협상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경우는 기업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여튼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연봉을 올리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연봉 협상을 준비하던 나는 회사 상황을 생각하며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회사의 인력 하나하나가 중요한 점과 현재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입사 4개월 만에 메인 기획자로 프로젝트를 맡았고 또 해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지르기로 했다. 이 계산이 끝난 뒤에는 큰 고민이 없었다. 더불어 어차피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없어서 안 올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사는 답정너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내가 1년간 진행한 업무 내용에 대해서 정리해 갔고 그렇게 협상의 날이 밝았다.
테이블에 앉은 팀장은 예상처럼 제시한 금액은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말이 나는 지금 판이 나에게 넘어왔다고 느꼈다. 그 말은 즉슨 내가 협상 테이블에 위에 있다고 느꼈다. 다음 말은 본인이 생각한 금액은 600 만원 인상이었다. 이 금액도 우리 회사에서 예외적으로 많이 올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작 200만원 차이를 꺼냈기에 나는 계산이 빠르게 끝났다. 엥? 고작 200만원을 협상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다른 회사에서도 한 번에 600 만원을 올리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연봉 6000 만원을 받아서 업무 성과를 잘 받아서 10%를 올린다라고 치면 그래도 60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 계산이 끝나니 200만원은 내게 보너스 개념이었다.
그렇다고 돈 200만원이 땅을 파서 나오는 돈은 아니기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이 돈이 필요 없는 돈인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전혀 기쁘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600 만원을 올려도 나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200만원 연으로 쪼개서 받으면 세금 떼고 밥 1~2번 사 먹을까 말까 금액이다. 그 돈이 없다고 내 생활이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회사가 성의를 보였으면 좋겠다. 나는 회사를 위해 면접 때 근무 조건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불만없이 헌신했다. 내가 먼저 양보한 만큼 이번에는 회사가 양보할 차례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이직 가능성을 암시하며 협상을 마무리했다.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에는 절대 안 된다던 말이 위로 보고는 해보겠다고 바뀌었고 그리고 기대는 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렇게 협상이 끝나고 나는 만족스러웠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할 말은 다해서 속이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후 요구 금액을 맞춰주었다고 전달받았다. 말을 전달한 팀장은 별 감정 변화 없는 모습에 심히 그 모습이 이상했는지 이 정도 금액이면 많이 오른 것이라는 등 그리고 본인이 위로 잘 말해서 올린 것이라는 등 하루 내내 이야기했다. 실제로 이상하게도 뭔가 기쁜 마음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들리기에 오만하게 생각들 수 있지만 나는 이 정도 인상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받아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SI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직접 일을 해보니 기획자는 클라이언트의 IT팀만 만나게 되지 않는다. 고객사의 IT팀의 개발자, 기획자는 물론이고 종종 마케팅, 정보 보안, 운영, 디자이너 등을 만나게 되고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사람이었다. 정말 이 사람은 생각이 없나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며 심지어 IT 팀에 있으면서도 이 사람이 어떻게 IT에서 일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역시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꽤나 억울했다.
협상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괜히 말도 안 되는 금액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고 괜히 이사, 대표한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1년 동안 개고생하고 보상받지 못한다면 직장 생활을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금액을 타협 없이 쓱 적고 메일을 보냈다.
나는 불평 그리고 불만에서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사람들은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야기해야 귀를 기울여주는 것 같다. 물론 자기 할 도리 못하고 말만 한다면 내쳐지겠지만 말이다. 운 좋게 연봉을 올렸지만 또 다르게 그 돈에 대한 내년의 부담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