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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Dec 30. 2020

인간수업, 규리의 잔인한 성장기록

현실을 깨부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

    넷플릭스에서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한 작품을 추천한다면 인간 수업을 택할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 단번에 빠져버린 작품이다. 나는 유독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고 한 층 들어가서 범죄 스릴러 중 살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방에 몰래 들어온 아무리 징그러운 벌레라도 잡을 때 절대 죽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잡아 살려주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누가 좀 죽어야 재밌다.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개연성을 많이 따져서 보기에 아무리 남들이 재밌는 작품이라도해도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비현실적이면 재미가 확 떨어진다. 이 말과 함께 갑자기 지금 떠오르는 건 베테랑의 마지막 싸움씬인데 황정민은 소화전에 허리를 처박히고 진짜 심하게 얻어맞아도 복싱까지 배운 유아인을 결국 제압해 버리는 의아한 상황들 정말 뭔가 싶었다. 액션은 좋은데 이건 심한 거 아닌가....?


    여하튼 내 취향을 글로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면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양들의 침묵을 말해주고 싶다. 스털링과 렉터 박사의 심리 묘사와 둘 사이의 오묘한 케미는 눈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스털링과 규리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점에서 비슷한데 인간수업이 좋았다면 양들의 침묵도 볼 것을 추천한다. 혹은 양들의 침묵이 좋았다면 인간수업을 추천한다.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감독으로 예를 들자면 데이빗 핀처를 좋아한다. 핀처 감독은 세밀한 심리 묘사로 관객을 극에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조디악, 파이트 클럽, 더 게임,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 하나하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를 찾아줘, 소셜 네트워크 등 드라마 적인 내용도 잘 만드는 감독이다. 최근 살인 스릴러 장르를 찍어주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던 참에 인간 수업은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혹시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면 바로 보러가면 된다.


부모님을 떠올리는 표정


    인간 수업은 내 선호 사항과 달리 중심 사건에서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를 다뤄 흥미진진했고 각 인물들의 욕망들이 짙게 묘사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무엇보다 위 작품에서는 캐릭터들이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태도 변화가 확연한 배규리(박주현 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가질 것 다가진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의 제목을 배규리의 성장이라고 정했고 성장하는 배규리의 모습을 중심으로 인간 수업을 리뷰해보기로 했다.


(1) 엄마는 친구에게 물었는데


 

     먼저 배규리는 강압적인 부모님으로 인해 주체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환경적으로는 부유한 집안에 머리까지 똑똑한 엘리트지만 부모님에게 속박당한 삶 속에서 스스로 인생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큰 상태이다. 부모님은 체중부터 읽는 책까지 간섭하며 자신의 유산을 빌미로 배규리를 옥죈다. 현실에 욕망 실현이 불가능함에 좌절하고 배규리는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한다. 이후에는 현실의 삶에 순응한 채 살아가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의 규리를 압박하는데 사용하는 돈이 가장 큰 장벽으로 서있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규리 역시 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아마 돈이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면 자살이 아닌 가출을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성격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규리는 매우 이성적인 타입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이후 극의 막바지에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순간 속에서도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모습 없이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다음 계획을 생각한다. 이런 성격을 기반으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실리적인 판단을 우선시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현재 부모님과 당장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는 순종하는 딸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가올 미래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욕망이란 불꽃은 잠시 주춤할지언정 절대 꺼지지 않는다. 오지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간의 위안으로 물건을 훔치며 본인의 욕망을 조금씩 채워나가지만 소방 알람 사건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채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본인 비행적인 불만 토로 방식이었던 도벽으로 오지수의 비밀을 알게 되고 욕망 실현의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2) 재밌어 보이냐?

 


    처음 규리는 오지수의 돈을 훔치는 목적으로 접근하지만 혼자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에게 없는 주체성을 갖고 있는 오지수에 대한 관심은 커져가고 이후에는 오지수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성매매 사업에 본인이 지금까지 모아둔 거금을 투자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하며 사업을 키우자는 제안까지 하지만 이 부분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바로 이 사업 자체가 본인의 삶이 아니라 오지수의 삶의 얹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먼발치에서 오지수의 사업을 관망할 뿐 실질적으로 본인이 나서지는 않는다. 이런 모습에 지수는 지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반대로 규리는 지수 없이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짜증을 낸다. 이 한계점은 지수에 의해서 규리는 계속 질문을 받는다. 지수가 규리에게 하는 말 중 하나인 '이 상황이 재밌지?'를 반복하며 규리의 주체성 없이 돈으로 사업에 발을 걸친 모습을 꼬집는다. 이후 규리는 지수가 조폭에게 볼모로 잡히고 경찰이 수사망이 가까워오는 최악의 상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3) 내가 해결할 테니까 짜져 있으라고


    

    지수가 조폭에 볼모로 연루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배규리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본인의 행동에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모습으로 오지수에게 "짜져 있어"라고 말하며 전면적으로 사건에 개입한다. 물론 붙잡히면서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조폭을 만나 얼굴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련의 사건 이후 차까지 불태우는 등 전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배규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한 층 더 나아가 지수의 어떤 이야기도 없음에도 스스로 적진인 노래방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규리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본인의 선택과 선택에 책임지기 위한 규리의 달라진 모습은 최종적으로 부모님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규리가 받은 인간 수업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바라던 부모님에게서의 해방을 이루긴 했어도 아직 규리에게 여전히 더 성장의 필요가 남아있었다. 부모님으로 벗어난 삶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인지 일이 마무리되고 떠날 여행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랜덤으로 정하고 그 전까지 떠도는 생활을 하겠다고 말한다. 규리는 어떤 삶을 꿈꾸게 될지 궁금해졌다.



(4) 나의 삶과 배규리의 삶


    내가 배규리의 삶에 관심을 갖고 글로서 남기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 배경을 살펴보면 내가 배규리네 집만큼 부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부모님도 나에 대한 집착과 간섭이 심한 편이었다. 주말이면 항상 조부모님 댁에 가야 했고 주중은 집과 학원을 순회하며 마음 편히 친구들과 놀러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생활 패턴 속에서 그냥 매번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했더니 내 생각 점차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이후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지옥 같았다.


    다음으로 배규리의 성격은 정말 나랑 비슷했다. 정말 똑같다고 느낀 것은 감정보다 이성이 한참 앞서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누구와 싸우더라도 흥분하는 법이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다음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다. 가끔은 내가 답답하고 숨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털어내고 싶지만 그 방법을 잊어버렸다. 기쁨이 뭔지 슬픔이 뭔지 잘 모르겠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이로울 행동만큼 고민하는 기계가 되었다. 특히, 마지막 규리와 지수가 모든 사업 인프라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지수는 이제 다 끝났다며 화를 내고 절망한다. 이와 달리 규리는 감정적 공감 없이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질문하는데 정말 나라고 느껴졌다. 나는 예전 군 시절 동기와 큰 다툼이 일어났을 때 동기는 엄청나게 화를 냈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해보자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를 떠올리면 내가 정말 징그러웠다.



(5) 시즌2는 나올까?


내 생각에는 아마 오지수와 배규리의 이야기로 시즌 2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미 메인 소재인 지수의 성매매 사업이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같은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기에는 어렵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인간수업의 깨달음이 없었던 것 같아서 거리감이 있다. 게다가 오픈 엔딩을 일부로 장치해두었기 때문에 시즌 2에서 정답을 정해버린다면 오픈 엔딩이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예 다른 청소년 범죄를 주제로 시즌2가 가능할 것 같지만 시즌1 청소년 성매매라는 무거운 주제와 그 과정이 임팩트가 강해서 조금은 부담이 있다. 그렇기에 아마 시즌 2는 어느 방면으로나 힘들 것 같다. 또 하나의 방안으로 시즌1의 이야기를 살린다면 스핀오프 격으로 사업이 시작되기 전의 오지수, 서민희, 최민수의 이야기 정도 다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 역시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과 같다. 오지수는 실장님과 어떻게 유대를 맺게 되었는지 서민희는 어쩌다 성매매를 하게 되었는지를 주제로 떠올릴 수 있다. 허나 듣는 순간 어느 정도 정답을 유추할 수 있어서 굳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결국 시즌 1로 끝나는 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만큼 시즌1 자체로 완성도가 높고 깔끔한 전개를 보여줬다는 반증인 것 같다.



인간수업 리뷰 끝.


p.s. 모든 이미지는 넷플릭스에서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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