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icial Kes May 15. 2020

삶은 무수한 장면의 연속이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

序文


무수한 장면

 내가 아일랜드로 떠났을 때 러시아로 향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첫 유럽 여행인지라 전날 잠도 거의 못 자고 매우 피곤한 상태로 공항에 도착했었다. 러시아를 경유하여 아일랜드로 가는 거라 장차 16시간의 장거리 여행. 치약도 통째로 가져와서 약국에서 튜브를 따로 사 담아야 했고 드넓은 인천 공항에서 길을 잘못 찾아 헤매고 또 헤맸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하고 비행기에 겨우 올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드는 고독감과 혼자 유럽 여행을 간다는 걱정으로 몇 시간을 보냈을까? 우연히 본 내 옆에는 눈 덮인 산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산 위에 파우더를 뿌린 듯한 이 장면은 여행의 시작되었음을 자각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무수한 장면, 내가 앞으로 쓸 시집의 제목이다. 사실 앞으로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메인 테마가 무수한 장면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앞서 만나본 여행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삶은 무수한 장면의 집합이다. 마치 Youtube를 보는 것 같다. 눈을 통해서 삶이라는 장면들을 계속 시청하고 있다.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다른 곳을 보고 있다면 다른 삶이 이어진다는 것은 참 재밌는 사실이다. Youtube의 동영상과 우리 삶이 차이가 있다면 Youtube는 끝이 있지만 죽기 직전까지 우리의 삶의 영상은 끝이 없다. 우리는 잠들어 있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꿈을 통해 무언가를 시청 중이다. 



아일랜드 도착 후 가장 처음  방문한 식당, 이름처럼 정말 맛있다.


 시청하고 있는 장면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만들고 일생을 만든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내가 만드는 동영상, 나만 볼 수 있는 아니 나만 살 수 있는 나의 삶. 그래서 각자의 삶이 재미있나 보다. 이런 생각 속에 어느 순간부터 이 장면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주 특별한 순간부터 그냥 평범한 일상까지, 발견한 장면들은 어쩌다 보니 시로 녹아들게 되었다. 바로 찍어 담을 수 있는 사진이 가장 간편하겠지만 내 스타일대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여러 방법들이 고려대상이었지만 사실 사진에는 관심이 없고 영상은 편집할 줄을 몰라서 (찍는 일이 뭔가 남 신경이 쓰여서) 혼자 쓸 수 있는 시를 택했다. 그렇게 이유들이 모여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은 너무 쉽게 지나가고 잊힌다. 마치 한 입 먹고 금방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그냥 흘려보낼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나 보다. 나는 2016년부터 시를 써왔고 시집도 여러 권 읽어가며 나의 언어를 찾아왔다. 가장 처음에는 혼자 주저리주저리 쓰다가 다음에는 학교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했고 졸업한 지금은 사회인 시모임에 들어가 시 쓰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나름 5년 동안 시를 써왔지만 부족함이 많다. 등단도 안 한 내가 무슨 시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 내 시집을 내고 싶다. 오늘이 이 거대한 야망의 시작인 셈이다. 대략 2025년을 내 시집 출간 시점으로 잡았다. 앞으로 5년을 더 쓰면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시를 읽고 작은 감정의 미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감정 혹은 생각도 좋다. 아주 잠깐이어도 좋다. 심지어 '이 시는 별로야'라는 생각조차도 좋다. 그냥 흘러가는 글들 중 하나라면 나는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시를 쓰면 쓸수록 시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시를 쓰는 이유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당신의 하루에 나의 시가 잠시 머물 수 있었다면 나에겐 기쁨이자 만족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 역시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앞으로 브런치에 그동안 써온 시를 올리면서 퇴고 작업과 편집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방금  5년 후에 시집을 낼 나를 위해 지금 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작가의 이전글 별다방 사내 문화는 수평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