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무료배송받으시려면 추가 금액을 내셔야 해요
캠핑을 앞둔 어느 금요일 밤, 육퇴 후 우리 부부는 익숙한 풍경으로 짐을 싸고 있었다. 남편은 새로 산 튀김기를 챙기며 한껏 들떠있었다.
새우튀김, 치즈스틱, 김말이, 핫도그.. 냉동실에 있던 튀김들을 모조리 챙기는 듯했다. 다 챙겨 놓은 식재료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남편이 물었다. "식용유 넉넉히 챙겼지? 모조리 다 튀기고 올 거야 후후."
혹시나 하고 식용유를 소분해 둔 통을 확인했더니, 넉넉히는 커녕 텅 비어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며 부엌 찬장을 열어 빈 통을 채워 넣으려는데, 귀신같이 식용유만 똑 떨어져 버렸다.
부랴부랴 시계를 봤더니 다행히 밤 12시 되기 30분 전, 쿠팡 앱을 켜고 1.8리터짜리 식용유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제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었다.
'8,350원 이상 추가 시 구매 가능'
순간 냉장고에 쟁여둘 것들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급한 대로 내일 당장 먹을 빵과 음료수를 담고 총 18,560원을 결제했다.
다음날 아침, 주문한 지 7시간 만에 받은 식용유를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패배감이 몰려왔다. 6,650원짜리 식용유 하나 사려고 하다가 18,560원어치 장을 봐 버린 상황이 못마땅했다. 마치 18,560원짜리 식용유를 산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왜 나는 캠핑장 가는 길에 마트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새벽배송이라는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무료인 듯 무료 아닌 새벽배송 서비스
쿠팡뿐만 아니라 마켓컬리, 오아시스 등 새벽배송 서비스마다 최소 금액을 채우면 식재료를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무료로 배송받기 위해서 일정 금액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가 필요하든 여러 개가 필요하든, 최소한의 금액을 지불해야 되는 새벽배송 시스템은 따지고 보면 무료인 적이 없었던 셈이다. 6,650원짜리 식용유를 사기 위해 8,350원의 배송비를 빵과 음료값으로 메꿨다. 배 보다 배꼽이 큰 소비였다.
지금은 귀찮아도 집 앞 마트나 시장에 들러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장을 본다. 그럼에도 내일 당장 필요한 것이 생기면 불안한 마음에 새벽배송을 시킨다. 바뀐 것이 있다면 최소 결제 금액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하여 장바구니를 조금씩 미리 채워둔다는 것이다.
급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필요한 식재료와 생필품은 생각날 때마다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놔뒀다가 새벽배송 시킬 일이 생기면 미리 담아두었던 것들도 함께 주문한다. 배송비를 채우기 위해 굳이 안 해도 될 소비를 막기 위해서다.
장바구니에 보관하는 동안 살 필요가 없어진 품목도 꽤 있다. 자연스럽게 소비 절제 효과도 가져온다.
자기 전에 주문해서 아침에 눈 뜨면 배송받는 시대라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택시 기본요금이 아까워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거나 버스를 이용했던 경험처럼, 내일 당장 필요한 것이 '새벽배송 기본요금'을 기꺼이 지불할 만한 품목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23. 10. 28.
양반밥 작은 공기 1박스(19,980). 캠핑 마트 장보기 고기, 술, 음료, 과자 (38,620). 장보고 나와서 컴포즈 커피 한 잔 (1,500). 배송비를 기꺼이 내고도 필요한 것만 살 때, 쿠팡이나 컬리 최소금액을 못 채울 것 같아 집 앞 마트를 이용할 때, 지지 않았다는 묘한 쾌감이 있다.
< 소비 관찰일지 : 잘 벌기 전에 잘 쓰고 싶어 소비와 욕구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