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깨비들 셋 모인 우리 가족은 외식과 배달음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날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안 좋은 날에도 외식하고 산책하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과 감정을 소화시킨다.
얼마 전에도 좋은 일과 함께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을 일이 동시에 찾아왔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모자란 축하와 위로는 든든한 한 끼로 채웠다.
소비를 기록하게 되면 일상의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데이터가 쌓인다. 덕분에 우리 가족의 ‘보상 데이’를 돌아볼 수 있었다.
먹는 데 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다만 보상을 보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쓸 때는 확실하게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자잘한 보상으로 소소하게 만족했다. 이런저런 보상 건수를 만들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외식과 배달로 저녁 시간을 즐겼다.
꽤 자주 보상 데이를 가졌던 이유는 보상의 양과 질 보다 중요한 것이 스피드였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보상,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우리에겐 그 무언가가 맛있는 음식이었기에 퇴근하자마자 집 근처 만만한 식당으로 달려갔고, 서로 불 같이 싸운 날이면 바로 그날 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하며 달아오른 마음을 빠르게 식혔다.
'보상'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외식
가장 빠르게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음식이었던 우리 가족은 그렇게 일주일에 몇 번이고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보상이었던 외식이 언젠가부터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더 이상 외식을 해도 전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집 근처 갈 만한 식당을 찾아보고, 아이와 함께 외출 준비를 하고, 밖에서 밥을 먹고.. 돈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시간들이 조금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채워지지 못한 욕구는 쇼핑이나 문화생활 등 또 다른 소비로 이어졌다. 얼마 전 보상 심리로 LG 룸앤티비와 거치대를 할부로 질렀다가 몇 달간 빠져나간 카드값에 현타가 세게 왔다. 물건 받고 좋아하는 시간은 잠깐인데 다달이 돈이 빠져나가니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잘한 보상의 날들을 지내오면서 깨달았다. 보상은 할부가 아닌 일시불로 질러야 한다. 횟수도 한 번, 결제도 한 번에 시원하게 질러야 한다.
빠르게 채운 욕구는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만다. 만족이 안되기 때문에 보상성 지출을 습관처럼 더 자주, 더 많이 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다 채우지 못한 욕구를 충동구매로 채우는 행위도 경험상 보상보다는 손해에 가깝다. 결제하는 순간의 아드레날린을 위해 몇 달간 할부금을 갖다 바쳐야 한다면 그것을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딱 하루, 일시불로 지르는 '보상 데이'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몇 번씩 쪼개어 즐겼던 ‘보상 데이’를 매주 일요일 딱 하루 일시불로 결제하기로 했다. 한 주 동안 축하할 일과 위로할 일, 함께 웃을 날과 같이 울어줄 날들을 모아 일요일에 더 값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예전처럼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한 날에도, 곧 다가올 일요일을 생각하며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복권 한 장 사서 한 주 동안 행복한 상상을 하듯 ‘보상 데이’라는 복권을 꼭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횟수가 줄어든 만큼 외식 메뉴도 당연히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번주는 내 생일이 있기 때문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기로 했다. 제철 대방어에 소주 한 잔 할 생각 하니 벌써부터 행복하다!
23. 11. 03.
저녁엔 외식 돈가스 25,900원. 딱히 저녁 생각이 없었는데 불금이라는 이유로 외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만족도는 쏘쏘. 집 가는 길 마트에서 마이쮸 750원. 컴포즈커피 1,500원. 자리를 잃은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책장 하나 더 주문제작 108,800원. 아이 옷 교환배송비 6,000원. 배송비 아까워 그냥 입힐까 고민하다가 몇천 원 더 내고 내년까지 입히는 게 더 낫겠다 싶어 교환 요청.
< 소비 관찰일지 : 잘 벌기 전에 잘 쓰고 싶어 소비와 욕구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