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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Aug 19. 2022

29만 원짜리 책을 샀다.


29만 원짜리 책을 샀다. 전집이 아니라 그냥 한 권이다. 고급 양장본도 아니다. 전자책이다. PDF로 다운 받아서 돌려볼 수도 없다. 그 책을 구매한 사이트로 들어가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읽기에도 불편하고, 책 치고는 지나치게 비싸다.


하지만 오히려 그 가격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인류의 명저 성경책도 3만 원 언저리인 판에 강의도 아닌 전자책이 29만 원이란 말인가?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것은 아침에 우연히 본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서였다. SNS에 뜨는 광고들이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는데, 결국 내가 광고에 낚여 전자책 한 권을 29만 원에 구입한 호구가 된 것이다.


책의 저자는 자청이라는 사람이다. 닉네임부터가 왠지 사기꾼스럽다. 흙수저에 비루한 루저로 살다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유튜브 영상 단 20개로 10만 구독자를 모았지만 호기롭게 은퇴하고, 여러 회사를 운영하며 일을 하지 않고도 월 1억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명상 관련 서적을 탐독하느라, 자기 계발 관련 책이나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던 내가 자청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건 지난달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그의 책 '역행자'는 베스트셀러 1위라는 수식어와 함께 교보문고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역행자? 무속인인가? 월 1억 자동 수익? 사짜의 스멜이 물씬 풍기는데?


나는 사실 돈을 벌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돈만 보고 일을 하지는 않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도 현금 또는 그에 준하는 가치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보류하는 편이다. 60세 이후엔 돈에 일절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세계를 여행하며 그간 배운 것, 깨달은 것,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내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브랜드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10년 후 나의 목표를 적는 노트에 <세후 개인 순 수입 월 10만 달러>라는 문장을 적어놓기도 했다. 매월 들어오는 수입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두었다. 이제 돈만 벌면 된다! 흐뭇해하면서.


그런데 이 자청이란 사람은 나보다 10년도 넘게 어린 주제에, 벌써 월 1억 수입을 실현시켰단다. 나는 회사 하나 운영하는 것도 고민이 많은데 이 사람은 6개의 회사, 1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글 쓰고 여행하며 산단다.


책이 아무리 제목 장사라고 해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걸 알면서도, 한 장 넘겨보지도 않고 겉표지만 보며 '사짜의 스멜' 운운하던 심리는 뭘까? 최근 아침 명상을 마친 후 눈을 감고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뻔하지 뻔해'하고 세상일을 다 아는 척하고 싶은 '자만심'


'돈 버는 법'에 관한 책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에고'


배우지 않겠다는 '오만함'


내가 꿈꾸는 것을 먼저 이룬 자에 대한 '질투'


자아성찰을 통해 바라본 나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진실을 인정한 후 한결 겸손해진 마음으로 (그러나 기왕이면 공짜로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밀리의 서재에서 '역행자'를 검색했다. 오! 있다 있어.


하지만 결국 앞 부분 몇 장을 읽다가, '이건 사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 실물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자청, 이 청년 대단한 걸!)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 (특히, 남편)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제 일이다.  


그런데 그 자청이 아침에 페북을 열자마자 내 눈앞에 또 등장한 것이다.


초사고 글쓰기를 발표 한지 1년 후

저자의 역행자는

교보 예스 24 인터파크 종합 1위를 달성합니다.


메타는 이제 내 생각까지 캐내서 알고리즘으로 엮는 것인가?


<역행자>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비결이 <초사고 글쓰기>라는 책에 담겨있다니.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책도 한 권 사 보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광고를 클릭했다. 그런데, 책 가격이 29만 원인 것이다. 뭐라고? 하며 화들짝 놀라서 내용을 자세히 보다가 결국....


책을 사 버렸다.


환불도 할 수 없는 전자책을.

책 치고는 참 비싼 가격이기에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있다.

책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자가 시키는 대로,

나는 이렇게 글도 열심히 쓰고 있다.


사실 마지막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 리뷰글을 몇 개 훑어보았다. 그중 한 블로거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꽤 긴 분량의 글인데 끝까지 쉽게 술술 읽혔다. 분명 재미있는 글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중간에 멈추지 못하고 다 읽게 됐을까?


이 의문에 대해 해당 블로거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 글은 12,000자를 넘겼다. 내 블로그 포스팅 중 가장 긴 분량이다. A4 용지 분량으로 대략 15 페이지 정도다. 당신이 여기를 읽고 있다면? 초사고에서 배운 스킬이 잘 먹히는구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글을 쓰면서 배운 것들을 의식적으로 녹여내려고 애썼다. ㅎㅎ  
[출처] 29만 원 전자책, 자청의 초사고 글쓰기 - 3독 & 솔직 후기 (feat. '30일 챌린지' 완료)|작성자 폴리매스 K


나는 이미 오랜 기간 블로그에 글을 써 오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사업도 일궜기에 글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다 아는 내용을 또 읽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실천하기 위해서다. (책을 통해 삶의 변화를 이뤄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의 차이는 단 하나다. 책의 내용을 실천하는 가, 아닌가.)


훌륭한 자기 계발서는 흐지부지 꺼져가는 행동의 불씨에 기름을 부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 번 해봄직한 심플하고 쉬운 방법을 제시하며 새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욕망으로 멈추지 않도록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의 돈 값을 하고 있다. 계속 읽고 싶게 만들고, 쓰고 싶게 만드니까.


사실 비싼 가격 때문이라도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나의 우매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일 열심히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전략과 자신감에 다시 한번 엄지를 쳐드는 수 밖에.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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