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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Oct 03. 2022

그만하기로 했다. 자기 계발

나는 한 때 자기 계발 마니아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유튜브를 구독했다. TED나 세바시를 즐겨 듣고, 생각의 힘을 강조하는 시크릿 류의 책이나, 습관의 힘을 강조하는 해빗 류의 책들도 잔뜩 읽었다.


그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책을 읽어라. 목표를 쪼개라. 실천하라. 실천 가능한 작은 목표를 만들어라. 이어서, 그들이 하루 10분에서 30분 정도를 할애해 실천해 온 간단한 생활 습관이나 리추얼(의식)을 소개한다.


성공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성공하지 않겠는가. 귀 얇은 모범생인 나는 배운 대로 즉시 실천한다.


문제는 그렇게 시작한 간단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 하루 10분 만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열 가지 모이면 하루 100분이 된다. 게다가 내가 좀 느린 건지 계획한 시간에 맞춰 끝내 지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의 모든 부자들은 아침 시간에 주요 일간지를 훑어보고, 경제 신문을 꼼꼼히 탐독한다는데 그렇게 하려면 나는 약 서너 시간을 신문 읽기에만 할애해야 한다. 애 학교도 못 보내고, 밥도 굶고 신문만 읽어야 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속도와 처지에 맞지 않는 계획을 실천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눈치를 보며 쓰윽 포기하기를 반복해 왔다. 반복된 실패의 경험은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점쟁이들이 말했지.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다고... 나는 결국 그런 인간인 건가?'


하지만 말이지. 적절한 시점에서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모든 루틴을 완수해나갔다면 나는 아마 이런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오전  


새벽 네시에 일어난다.

차갑지 않은 물을 한 잔 마신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뒤,

온 마음을 다해 거품을 내어 손을 닦고

거울 속의 나에게 미소 지으며

큰 소리로 다섯 번 외친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이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책상에 앉아 꿈 100번 적기를 한다.

이어서, 30분간 영어 원서를 읽는다.

아침 식사를 할 땐 음식을 가급적 100번씩 씹고

(솔직히 이건 한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식사 후 공원 트랙으로 가 파워워킹 한 시간을 한다.  

녹초가 된 몸으로 주요 일간지를 읽는다.

국내외 동향을 파악한 후엔 경제 신문을 꼼꼼히 읽는다.



오후


최소 하루 한 시간은 책을 읽는다.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역사, 인문, 심리, 경제, 철학서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

책을 나의 멘토라 생각한다.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그것을 다시 필사하며

책 한 권을 통째로 씹어먹듯이 읽는다.  

한 시간은 블로그에 글을 쓴다.

(글도 쓰다 보면 세 시간은 족히 잡아먹는 게 문제)  


운전을 하거나 이동 중에는 오디오북을 듣거나

영어로 된 팟캐스트를 들으며 쉐도잉을 한다.

식전 요가를 한 시간 한다.

가공되지 않은 식품으로만 요리를 해

정성껏 차린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가 주방에 남지 않도록 즉시 해 치우고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다섯 개 쓴다.

아이에게도 감사일기를 쓰게 한 후

영어책 한 권, 한글책 한 권을 읽어주고

5년 후의 내 모습을 영화의 장면처럼 상세하게

시각화하며 최소 10시 전에 잠든다.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봤다. 적으면서 내가 끈기 없는 사람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루틴을 소화하려면 적어도 누군가가 우리 집 살림을 도맡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고, 작지만 돌봐야 할 직원이 있는 회사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이 모든 추가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젠가부터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을 따라 하기보다, 나 답게 살면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야 할테니 말이다.


그럼 나답게 사는 건 무엇일까?


나는 소설과 시를 마음껏 읽고 싶다.

적어도 하루 여덟 시간은 자고 싶다.  

산책길에 잠시 멈춰서

줄지어가는 개미떼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산더미 같은 할 일을 두고

'내가 글이나 쓰고 있을 땐가'

죄책감을 느끼는 일 없이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쓰고 싶다.

먹는 일에 너무 시간을 쏟고 싶지는 않다.

신선한 음식을 최소한으로 조리해서

간단하게 먹고 싶다.

하지만 가끔 떡볶이나 라면을 먹게 될 때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유연함을 갖고 싶다.

가끔은 쓸데없는 짓을 하고

(혼자 코인 노래방 가기, 스도쿠)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사들이고 싶다.

가전 제품보다 화가의 그림을 사는데 돈을 쓰고

뒷마당에 고추와 애호박을 심는 대신

꽃을 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지 불쑥 여행가방을 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고 나니 애당초 루틴대로 살기는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자기 계발 루틴에서 미련을 버리고, 딱 하나만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하는 일. 매일 눈을 뜨자마자 방 한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숨소리를 듣는 일이다. 아침을 고요하게 시작하면, 차분한 마음을 하루종일 이어가기 쉽다.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미 완벽하며 각자 저마다의 개성과 훌륭한 점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미 각자 완벽하기에 다른 사람을 모방할 필요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할 일은 내 안에 이미 숨어있는 보석을 찾는 것이다. 그 보석을 찾아 환하게 빛을 비추면, 빛에 반사된 각자의 보석이 세상을 조금씩 더 환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자기 계발을 멈췄다.

대신, 내 안의 보석을 찾아 나를 탐구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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