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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자꾸 깨어난다면

by 레이지마마

남편이 살금살금 방에 들어온다. 눈을 떠버렸다. 새벽 2시 30분. 큰일이다. 이러다 또 밤새 뒤척이면 안 되는데….


스르륵 다시 잠자는 모드로 돌아가기 위해 등을 쓰다듬어 달라고 했다. “손톱으로 긁지 말고 손바닥으로…”


손바닥을 빳빳하게 펴서 등을 문지른다. 때가 밀릴 것 같다. 심지어 뭔가 손에 걸렸는지 손톱으로 콕콕 긁어낸다.


‘한 군데만 세게 문지르지 말고, 전체를 살살 쓰다듬어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건 구차하다. 쓰다듬는다는 건 애정과 보살핌의 마음이 담긴 행위인데, 남편의 손길엔 피곤함과 귀찮음이 묻어난다. 새벽이니까. 졸리겠지. 빨리 자고 싶겠지.



“이제 됐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쌔근쌔근 코를 곤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또 나만 남았다.



한 번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이 두더지 게임처럼 떠오른다. 요즘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사업도 생물이라 주기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지금이 그때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저지르고 봤겠지만 이제는 한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염려보다,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일까?’ 류의 고민이 시작을 주춤하게 만든다.



눈을 감고 대충 자금 계획을 세워보다, 세금 관련해 궁금증이 생겼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면 다시 잠들기 힘들 텐데.’ 망설이다가, 결국 폰을 집어 들었다. 네이버 지식인을 훑다가, 관련 뉴스를 읽다가, 관련 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국회의사당 홈페이지까지 들어갔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회의록을 찾았는데 hwp 파일이다. 안 열린다. 한글 뷰어 앱을 깔아야 한단다. 결국 귀찮아서 포기했다.



3시가 넘었다. 완전히 말똥말똥 해졌다. 큰일이다. 잠 안 올 때 펼치는 비장의 무기, 양자물리학 책을 꺼내 들었다. 밤에 읽으면 두세 쪽 만에 곯아떨어진다. 그런데 웬걸. 새벽이라 그런지 머리가 맑다. 내용이 술술 읽힌다. 내친김에 그냥 읽기로 한다. 음… 그렇군. 음.



작가가 말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해 전면적인 시각의 변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를 꼭 읽어보라고. 그래서 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밀리의 서재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없다. 구글 검색을 했다. 클릭했는데 유튜브다 . <동시성 현상과 홀로그램 우주 이론> 2분쯤 보니 지루해졌다. 알고리즘의 이끌림을 따라 데이비드 봄의 생애를 다룬 짧은 다큐를 보고, 그가 인도의 현자 크리슈나무르티와 나눈 대화가 흥미로워 그걸 또 검색하고, 그러다 달라이 라마로, 책 추남으로….



새벽 네시 반. 나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깨어나면 이 세 가지를 꼭 하세요.>라는 영상을 보고 있다. 이 시간에 깨는 사람들이 많은지 관련 영상들이 줄줄이다.



불교 채널에서는 ‘3시에서 5시 사이는 매우 영적인 시간이니, 평소 고민했던 일이나 삶에 관한 깊은 질문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고, 기독교 채널에서는 ‘하느님의 축복과 사탄의 악령이 동시에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이다. 기도하라.’고 했다. 신비가 들은 ‘인생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조짐이니, 의식의 확장을 위해 명상을 하라고 했다.



정말 뭔가 있는 걸까? 이 시간에 자꾸 깨는 것이 신의 은총이고 변화의 조짐일까? 모르겠다. 영적인 각성이고 뭐고 나는 그저 푹 자고 싶다.



창문 너머로 아침이 밝아온다. 물을 끓여 차를 한 잔 우리고, 사과를 한쪽 잘라먹었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출근할 시간이다. 이제야 졸음이 슬슬 밀려온다.




리즈

20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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