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많이 변했잖아.
이제 학벌이나 네가 속한 조직의 타이틀 뒤에 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
각자가 '작은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잖아.
달리기 유튜버, 손글씨 개발자, 할머니 전문 인터뷰 작가, 이끼 전문 가드너 혹은 커피 한 잔에도 유니크한 철학을 담는 바리스타처럼 각자가 좋아하는 일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색깔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주목받는… '마이크로 전문가 - 덕후'의 시대. 한 분야에 깊이 몰입해 꾸준히 파고드는, 열정과 지속성이 결국 신뢰와 영향력이 되는 시대. 대학 간판이 아니라 '네가 삶에서 쌓아 온 흔적'이 너를 증명하는 시대지.
많은 부모들은 아직 그걸 몰라. 그래서 계속 이렇게 말하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전공보다 대학 이름이 중요하지. "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그건 우리 시대의 언어야. 그 시절엔 번듯한 학벌이 번듯한 직업으로 연결됐고, 직장과 타이틀이 평생의 계급이자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했거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중요해서, 즐거움이나 행복 따위는 자꾸만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어. 낙오되지 않으려다 보니 불안이 습관이 되어 버렸지.
그 습관 때문에
세상에 변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점점 우리를 닮아가는 너희의 표정도 잘 읽지 못하나 봐.
그래서 참 미안해.
그러니 얘들아, 부모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도 돼. 부모님이 너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살았을지는 몰라도,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너 자신이야. 너와 가장 오랫동안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할 사람도 너 자신이고.
언제나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게 잘 될까?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런 계산은 아직 하지 말고, 가슴 뛰는 일, 몰입할 수 있는 일, 뿌듯한 기분이 드는 일을 해. 하다 재미없어지면 또 다른 걸 시도하면 되는 거야. 너희는 젊잖아.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고, 경험할 수 있는 나이잖아.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간섭하고 명령하고, 강요한다고?
정말 힘들겠다.
답답하겠다.
말하기 싫겠다.
하지만, 대들고 싸우지는 마.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세상이 빨리 변하는 건 부모 잘 못이 아니잖아. 그 방식이 옳던 그르던 부모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부모들도 속으로는 많은 고민을 해.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확신이 안 설 때도 있고. 일단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 '중간은 가겠지. 망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치를 살피기도 해.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뚜렷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처럼 안 느껴지는 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드는 게 답답해서 화가 나는 걸 거야. 조곤 조곤 부모님과 대화로 풀어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일단 앞에선 '네. 네.' 공손하게 대답하고, 조용히 몰래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봐. 왜 당당하지 않게 몰래 해야 하냐고? 좀 치사하게 들리겠지만 너희는 아직 보호받는 입장이라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어. 부모님이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해 주시고, 용돈도 주시니까. 그 정도 눈치는 보고, 비위도 맞춰야지.
무언가 배우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면, 부모님께 요구하지 말고 직접 방법을 찾아봐. 네 용돈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작게라도 부업을 시도해 보거나.... 그런 경험들이 앞으로의 삶을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부모님이 도와주신다면 아주 감사한 일이고, 못 해주시더라도 원망은 하지 말아야 해. 그건 각자 처한 현실의 한계일 뿐, 사랑의 크기가 아니니까. 지원을 받는다는 게 다 좋은 것도 아니야. 모든 일에는 이자가 따르니까. 도움을 받으면 그만큼의 간섭도 당연한 거겠지?
그리고 꼭 기억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공감과 존중이야. 아무리 능력자라도 싸가지 없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해. 모든 인간은 다 다르고, 각자 자기만의 우주를 살고 있거든.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언제나 사람 때문에 괴로워. 기대하고 실망하고, 강요하고 분노하지.
우리 세대는 그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자식이 나와 별개의 존재임을 자꾸 까먹어. 그래서 자기 방식을 자식에게 강요하고, 질문하는 대신 가르치려고만 들어. 참 미숙한 사랑이지. 너희는 어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류는 진화하니까. 너희는 분명 우리보다 더 나은 세대야.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독립하기 전까지 '꼰대 부모와 함께 사는 기술'을 연습해. 그게 결국 사회에 나가면 '누구 하고도 함께 잘 사는 기술'이 될 거야.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남의 생각도 존중하는 것. 그것만 잘해도 너는 이미 훌륭한 어른이야.
2025.10.28.
리즈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