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제주에서 얻은 기적같은 선물들

by 레이지마마

나는 사는 내내 선물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마음에 품은 소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 이루어졌다. 절대 예상하지 못 했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말이다.


2012년, 제주에 처음 와서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수 없을 때, 방에 누워 애니팡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해,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후로 올레길을 걸었다. 한 코스, 한 코스 걸으며 그 걷는 시간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기록이 제주 정착기로 이어지고, 한달살기집 운영자의 경험담으로 이어졌다. 제주 이주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꽤 즐거웠던 것 같다. 뭔가를 많이 했는데,노력하는 모드는 전혀 아니었다. 남들에겐 노력처럼 보였을 지 몰라도, 나는 즐거움만으로 움직였다. 땅 살 돈도 없으면서, 재미로 땅을 보러 다녔다. 옆집 엄마들과 고사리를 꺽으며 '계산해 보면 우린 시간당 800원을 번 꼴이야.'하면서 깔깔 웃었다. 시골 동네라 피자 배달을 안 해 줘서, 몇 개부터 배달이 되나 알아보기 위해 피자 배달 공동구매를 하고, 인스턴트 파티라 이름지어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 시절 큰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시내에 있는 유소년 클럽으로 일주일에 두 번 축구를 하러 다녔다. 당시 재정 상황도 여의치 않았고, 시내까지 거리도 멀어 축구장에 따라가는 것도 학부모들과 어울리는 것도 무척 망설여졌다. 하지만, 아들이 신나게 드리블을 하고, 골을 넣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매번 따라가 응원을 했고, 엄마들과 어울려 오뎅을 끓였다. 그렇게 친해진 인연 중 한 명이, 부동산에선 절대 구하지 못 할 좋은 땅을 싸게 소개시켜줬다. 돈이 없었지만, 워낙 매매가가 저렴해서 대출을 90% 가까이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펜션을 세 얻어 한달살기 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낡고 방음이 안 되어 여러가지 불편이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 직접 집을 지어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은밀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전혀 알지 못 했고, 생각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그 소망은, 여러 상황과 인연들이 맞물려 고작 1년만에 내 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매일 기록하던 블로그를 통해, 모델하우스도 없이 도면과 계획만 가지고 집 일곱채를 분양한 것이다. 불과 40분만에 말이다.


참 신기하다. 그 모든 것이 마치 무질서 속의 질서처럼, 전혀 개연성 없어 보이는 일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소망의 실현으로 이어졌다.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삶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을 선물해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방법을 누구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미래는 삶에게 맡기고,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을 살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엔 언제나 행복이 있다. 또깍 또깍 타이핑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목수의 망치질 소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도리의 촉감, 내 옆에 놓인 따뜻한 차 한잔.... 조금이라도 방심해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면, 이 충만한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오늘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하고 말이다.


그럴 때 나는 호흡을 한다.

숨은 늘 쉬지만,

숨이 만들어내는 몸의 감각 속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쉽게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평온하고,

충만한

지금 이 순간.



2025. 12. 9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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