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비즈니스 클래스라…

by 레이지마마

친정 엄마와 아빠가 제주도에 오시기로 했다. 평생 일만 하고, 운동은 제대로 안 하고 살아서 두 분 다 연세에 비해 몸 상태가 좋지 않다.


70대 후반인 엄마는 한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몇 년 전 인공 관절 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 좀 걸으시나 했더니 이제 반대쪽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한다. 80대인 아빠는 작년부터 전립선암 호르몬 치료를 받는 중이다. 약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늘 피곤하시단다. 피곤하니 눕고 싶고, 누워 있으니 근육이 자꾸만 빠지고, 근육이 빠지니 더 움직이기 싫고... 한 마디로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있다.


그래서 여행은 엄두도 못 냈는데 모처럼 오신다는 말씀에, 무척 반가웠다.


해가 갈수록,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제주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오셨으면 해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예약했다. 비행기 기종도 확인했다. 3열짜리 큰 비행기로 모시려고.


‘한 시간 가는데 뭐 하러 자리에 돈을 쓰냐? 얼른 취소하고, 싼 표 끊어라.'라고 아빠, 엄마가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성화를 했다.


자식, 손주들 여행 갈 땐 여비에 보태라고 100만 원씩 척척 내어놓는 양반들이, 자기 자신에겐 왜 저렇게 인색할까?


'아, 그냥 좀 편하게 다닙시다.' 웃으며 말한다고 했지만, 은근히 묻어 있는 짜증의 기운을 엄마는 눈치챘나 보다. '아유 정말...' 하면서 말을 흐린다.


그러고 며칠 뒤, 또 전화가 왔다. 아빠는 안 오신다고.


- 어디 아프시대?

- 아픈 건 아니고, 피곤해서 꼼짝도 하기 싫대. 집이 편하대.

- 휴... 알았어.

- 아빠 표 취소하는 김에 내 것도 같이 취소하고 그냥 제일 싼 걸로 끊어. 어차피 한 시간이면 가는 걸.

- 또, 또 시작이다. 그냥 타고 와. 엄마.


그렇게, 엄마는 마지못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다.


하지만, 편하게 모시고자 했던 내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큰 기종은 당연히 램프로 연결될 줄 알았는데, 엄마가 탄 비행기는 버스로 이동했다 한다. 비행기가 커서 계단도 길고 높았을 것이다. 절뚝대는 다리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계단을 올랐을 엄마. 설마 하고 물어보니, 탈 때도 내릴 때도 모두 계단과 버스로 이동하셨단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엄마는

‘그러게 뭐 하러...'라는 잔소리 대신,


'그래도 비즈니스라 맨 먼저 내렸어. 버스도 앉아서 왔어.'라고 하셨다.


ㅠㅠ


20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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