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이라면 poem
누군가 말했지.
잡뼈로는
뽀얀 국물이 우러나지 않는다고.
사골이나 꼬리를 넣어줘야
제대로 된 곰탕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믿는다.
시간을 들여 깨끗이 핏물을 빼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하루 종일 정성을 들여
끓이고 또 끓이면
잡뼈에서도 어엿한 사골의 맛이
우러날 거라고.
모든 것은 공들이기 나름이니까.
- 경건한 마음으로, 핏물을 우리며.....
대형마트에서 수프 본 soup bone이라고 쓰여 있는 잡뼈를 샀다. 1.8kg 팩에 7불 (약 6,000원)
호주 마트에선 소꼬리 (OX Tail)도 네 덩어리 8불 정도에 살 수 있고 우족 (Marrowbone)도 매우 저렴하게 판다. 단, 개 먹이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도저히 살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한국 정육점이나 아시안 마트에서 우족을 구입한다.
10년 전 뉴질랜드 살 때 사골 큰 거 우리나라에서 20만 원은 줘야 될 크기를 현지 정육점에서 공짜로 주기도 하고, 마트 정육코너에서 1~2불에 팔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시아인들이 먹는 걸 알아서 가격이 약 10불~20불대로 훌쩍 뛰었다는 소식이다. 호주도 아시안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마트에서는 조금 더 높은 가격을 붙여 일반 정육 코너에서도 판매를 하는 추세다.
곰탕 국물을 뽀얗게 우리려면 핏물을 잘 빼주는 게 중요하다. 저녁 5시 무렵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오다가다 새 물로 갈아주며 핏물을 깨끗하게 제거했다.
핏물 제거 후 깨끗한 물을 받아 30분 정도 팔팔 끓이면 찌꺼기 같은 게 떠오른다.
불순물과 함께 물을 싹 버리고 흐르는 물에 뼈를 깨끗이 빡빡 씻는다.
그리고 다시 새 물을 받아 한 시간 정도... 뼈에 붙은 고기가 잘 떨어질 때까지 끓인다.
조금씩 뽀얀 기운이 올라온다. 계속 끓인다.
기름이 둥둥 떠오른 첫 번째 끓인 물.
국물은 다른 통에 옮겨 기름이 굳을 때까지 식히고, 뼈에 붙은 고기는 살을 발라 잘 저며서 따로 보관.
1차 국물을 식히면 이렇게 둥둥 떠 있던 기름이 굳는다. 싹 걷어서 신문지에 싸서 버린다. 싱크대에 그냥 버리면 하수구 막힘의 원인이 되고, 그냥 먹으면 동맥 경화의 원인이 된다. (물론 의학적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다.)
냄비를 깨끗이 닦아내고 살을 발라낸 뼈에 새 물을 받아 2차 국물 우리기 시작.
뽀얗게 우러난 2차 국물. 위 국물은 물을 보충해가며 6시간 끓였을 때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3차까지 끓이고, 식히고 기름을 걷어내길 반복하며 모아진 1,2,3차 국물을 합친다.
영상 35도의 날씨.
에어컨도 못 켜고 선풍기만으로 하루를 견디며 12시간 동안 곰탕을 끓였다.
이렇게 끓인 설렁탕, 곰탕은 사실 지방 함량이 높고 철분 함량이 생각보다 미미해 몸에 득 보다 실이 많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성장기 아동은 우유와 곰탕을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끝내 꺾지 않으시는 우직한 남편. 그리고 아빠 식성을 유독 닮아 곰탕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도승이 된 마음으로 하루 종일 곰탕을 끓였다.
늘 그냥 지나치던 잡뼈를 왜 집어 들었나.
이쯤에서 그만하고 갈비탕이라고 우길까,
프림을 사다 확 풀어버릴까....
후회와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며.
은근과 끈기로 하루 종일 국물을 우리며 얻은 깨달음은,
곰탕은
전문으로 하는 식당 가서 사 먹읍시다.
- 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