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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04. 2021

남편과 나

보통 남편의 아내로 사는 법

유부초밥을 쌀 때 나는 둥그런 부분이 위로 가도록 놓고, 남편은 밥이 위로 가도록 놓는다.

화장실 휴지를 걸 때 나는 풀리는 부분이 위로 가게 놓고, 남편은 아래로 가게 놓는다.

남편이 “내가 설거지할게”라고 말하면, 나는 밥 먹은 직후 즉시 하겠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그래. 고마워.”한다. 사실 남편의 뜻은 한 숨 돌리고 (또는 한 숨 자고 나서) 내킬 때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입장이 바뀌면 나도 내킬 때 한다.

나는 가끔 핸드폰을 꺼 놔도 된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언제 어디서나 벨소리가 세 번 울리기 전에 받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따뜻한 차를 좋아하고,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하고, 남편은 단체 스포츠를 좋아한다.

나는 이메일이나 문자로 문의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직접 찾아가서 문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울한 표정을 짓는 건 나를 위로해 달라는 뜻이지만 남편은 ‘내가 뭘 잘 못했는데 그러지?’하고 눈치를 보며 슬슬 달아난다. 반대로 남편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꼬치꼬치 묻고 싶지만, 남편은 혼자 내버려 둬 주기를 바란다.

나는 책으로 배우고 남편은 유튜브로 배운다.

나는 내비게이션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남편은 내비게이션이 늘 이상한 길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와 나는 이렇게 많은 부분 다르다. 사는 방식도 일하는 스타일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각도.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 있지만,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또는 안다고 하면서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옳고 그가 틀렸다고 굳게 믿어온 18년의 세월.

오늘 아침 나는 유부초밥을 싸며 그 세월을 가만히 되돌아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에서 평행한 시간을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남편의 우주를 파괴하고 내 우주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폭력이었다.

옴마니 반메 홈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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