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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Aug 04. 2020

설거지를 하며

poem

참기름에 소고기를 달달 볶다가

감자와 양파, 애호박을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인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생선을 구울 때는

주변에 튀지 않도록

프라이팬 위에 신문지를 덮어

중불로 노릇노릇 굽고

생선이 익어가는 사이

콩나물을 얼른 무쳐 접시에 담는다.

초록색이 아쉬우니

브로콜리도 살짝 데쳐 한 접시


자~ 다들 식사합시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굳이

계란 프라이를 하나 부쳐 먹겠다고

주방을 뒤적뒤적거리는

남편의 뒷모습.

굳이 라면이 땡긴다며

냄비를 꺼내 들고

"몇 개 끓일까?

나중에 한 젓가락 달라고 하지나 말어!"

분주히 움직이는

그의 얄미운 등짝.

아들 이노무 자식까지

맨밥에 김만 후다닥 먹고

일어서려 할 때


나는

숟가락을 탁! 내리치며

소리치고 싶었다.


앞으로는 각자 알아서 차려먹어!



.


벌써 6개월째다.


코로나로 국경이 막혀

소원대로

각자 알아서 밥을 차려먹게 됐다.


남편은

마누라 눈치 볼 것 없이

계란과 라면을

혼자 원 없이 먹을 수 있을 테고

나는

아이들이 먹고 남은 반찬으로

대강 끼니를 때우며

단촐해진 식사 시간의

공백을 우두커니 마주한다.


한 사람이 빠졌을 뿐인데

확실히 설거지가 줄었다.

흐르는 물로 밥알을 닦아내며

열기가 가득하고, 분주했던 주방과

남편과의 신경전을

돌이켜 생각한다.


지긋지긋해 정말

중얼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  

조용히 가슴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순간 가슴에 툭하고 걸린

웃음이 눈물로 변해

그릇 위로 똑똑 떨어진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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