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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27. 2020

내가 훌륭한 어른이 된 것은 매를 맞고 자라서가 아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분명 리더십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약 그러한 무기를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당신을 조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내가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만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내가 자리를 떠나는 순간 당신에게 미치는 나의 영향력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규율을 강조하는 선생님들의 교육 방식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측정한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이런 환경에 있는 학생들은 규율에 엄격한 선생님이 교실 안에 있을 때만 잘 행동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자리를 떠나면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돌변한다.


이와 반대로 학생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님들도 있다.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있건 없건 거의 차이가 없다. 당신이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당신이 주변에 있을 때만 아이들이 제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당신이 있건 없건 지혜롭게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좋은 부모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댈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주는 존재라고 믿는다.




주옥같은 이 글은 요즘 한창 노장사상에 빠진 내가 새벽 두 시 반에 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다가 문득 영감을 얻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것... 이 아니라, 자기 계발과 영성에 관한 글과 강연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작가 웨인 다이어(Wayne Dyre)가 노자의 도덕경을 서양의 시선으로 재 해석하여 쓴 저서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 (원제 Change your thoughts, Change your life)'에 나온 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 밑줄을 긋고, 글로 옮긴 이유는 '아이들을 좀 더 엄격하게 키울 필요도 있는 거 아니야?'라며 나의 자녀교육 철학에 종종 반문하는 남편에게 '거봐, 이렇대잖아.'라고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흠흠) 나는 튼튼한 목청 없이는 키울 수 없다는 아들 둘을 큰 소리 내지 않고 키웠다. 아이들에게 소리 안 지르는 엄마 경진대회가 있다면 우승컵을 노려봐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부분만큼은 자신이 있다. 물론 단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살다 보면 짜증이 솟구쳐 도저히 통제 불가일 때가 있지 않은가), 보통 제정신이 돌아오는 10~20분 이내에 아이에게 다가가 정중히 사과한다. "엄마가 실수했어.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순간적으로 욱하고 짜증을 냈어.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을 못 한 거야. 미안해. 화 안 내고 좋게 말해도 우리 아들은 다 알아들을 텐데... 사과할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큰 아들을 너무 온순하게 키우는 것에 대해 남편은 내심 불안해했다. 한없이 사랑이 많은 아빠지만 가끔은 엄격한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다며 별거 아닌 일로 크게 호통을 쳤는데, 그것은 종종 부부싸움으로, 자녀 양육에 관한 대 토론으로 이어졌다. 남편의 주장은 '이 험한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특히 운동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감정적인 맷집을 좀 키울 필요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에 대해서 만큼은 나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사실 남편은 운동선수들에게 가해지는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 누구보다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이 그렇다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축구부에 입단한 아들이 힘든 마음을 눈물로 표현할 때 그 상황을 초래한 어른들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들을 탓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있다. '중학교 가면 더 힘들어질 텐데, 그 정도도 못 견디면 축구하지 말아야지'라고 대 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취지의 말을 돌려 돌려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남편과 나는 수차례의 부부싸움과 토론과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아이를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시키지 않기로 했다.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면 부조리한 사람이 된다라는 원칙에 입각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인격을 훼손하지 말자는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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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를 질러 아이를 쫄게 만들거나, '너 그런 식으로 하면 장난감 다 버린다'라는 식으로 협박하는 것은 가장 쉽고 빠르게 아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결코 장기적인 효과가 없을뿐더러 아이의 맷집만 키운다는 사실을 책에서도 봤고, 주변의 실제 사례로도 수 차례 목격했다.


죽어라 말을 안 듣고, 뺀질거리고, 부산스러운 아이들일수록 부모가 감정적으로만 엄한 경우가 많다. 감정적으로만 엄하다는 것은 뚜렷한 기준이 없이 자신에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며 아이를 잡는 것을 뜻한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밥도 혼자 못 먹어?"라고 입으로는 짜증을 내면서 손으로는 밥을 떠먹여 준다거나, "핸드폰 그만해. 콱!" 해 놓고서, 옆에서 자꾸 귀찮게 굴면 '야야, 저기 가서 놀아.' 하며 핸드폰을 툭 던져주는 식이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하는 건 용서 못 해"했으면서, 입장권 할인을 받기 위해 여섯 살 아이를 만 4세라고 주장하며 "엄마 나 여섯 살인데"하는 아이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 누르기도 한다.


'엄격한 부모님 덕분에 저는 사랑의 매를 맞으며 훌륭하게 자랐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폭력적인 방식의 훈육을 정당화하여 자신이 받은 감정적 상처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실 7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다들 어느 정도 매를 맞고 컸다. 집에서 안 맞으면, 학교에서라도 맞았다. 전후 세대에 나고 자란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군인처럼 키웠다. 천방지축이고 미성숙한 아이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는 군대 식의 엄격한 통제가 불가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상처 받은 아이들이 반항과 방황을 하면 문제 아동, 비행 청소년으로 분류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말이 다수의 힘을 얻고 있다. 아이의 창의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 훈육보다는 칭찬으로 아이를 기르고자 하는 부모도 많다.


사랑의 매를 맞고 자란 우리 세대는 그래서 다소간의 혼란을 겪는다. 특히, 제대 후에도 직장 사회라는 군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아빠들은 아내가 아이를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우는 것 같아 불안하고 못 마땅하다. 큰 소리를 질러 아이를 겁주며 혼내는 남편을 향해, 오은영 선생님께 배운 올바른 훈육법을 아무리 설파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다들 이 정도는 하고 살아. 나도 그러고 잘 컸어.'다.


'당신 잘 큰 거 아니거든요?'


물론 칭찬 일색으로 무조건 오냐오냐 키우는 것도 문제다. 조건 없는 사랑과 수용은 할머니 할아버지로 족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건강한 생활 습관, 사회생활의 예절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르친다는 표현보다는 어른으로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아이에게 권위가 서려면 (쉽게 말해, 말발이 서는 어른이 되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정해진 규칙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안 돼야 하는 것이고, 올바르지 못 한 행동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사탕을 쥐어주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 달라고 떠나가라 울며 떼를 쓰는 아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런 아이를 다루는 방식 또한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너는 울어라. 나는 모른다.' 하는 식으로 우는 아이를 외면하고 앞서 걸어가는 부모. 하지만 영악한 아이들은 부모가 주변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며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더 크게 더 우렁차게 울어재친다. '나는 오늘 저 변신로봇을 기필코 손에 넣고야 말 것이다.'


그 상황이 고집과 배짱이 더 센 사람이 이기는 한판 승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떼를 써서는 장난감을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며 떼를 쓰면 안 된다.'라는 사실 역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내 자랑을 좀 하자면 (흠흠) 나는 아이가 말길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며 영악하게 생떼를 부리는 세 살 무렵부터 그 방면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아이의 어깨를 잡고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춘 뒤 '마트에서 떠들면 안 되는 거야. 땡깡부린다고 장난감을 사주는 일은 절대 없어.'하고 무표정으로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이때 표정이나 말투에 짜증이나 분노가 배어있으면, 아이는 엄마가 주변 눈치를 보느라 당황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좀 더 울어재칠 확률이 커진다.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단호한 표정으로 진정이 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며 기다리다가, 아이가 1분 이상 고집을 부리면 쇼핑을 멈추고 즉시 밖으로 나간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런 과정을 두세 번쯤 거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울어봐야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와 더불어 아이가 얌전히 따라다니며 쇼핑을 도와준 날엔 '지루했을 텐데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하고 꼭 마음을 표현했다. 지금도 나는 '잘했어'하는 칭찬보다는 '고마워'라는 감사의 표현을 선호하는 편이다. 잘했다, 잘 못 했다 하는 말은 결국 내 기준으로 아이를 재단하고 길들이는 것 같아서, 기왕이면 어른들끼리 하듯 '고맙다'는 말을 더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나의 양육 방식을 '뭘 그렇게까지, 유난스럽게....' 하던 남편이, 이제 다 자라 열여섯, 열한 살이 된 두 아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 잘 컸을까? 우리가 애들 하나는 참 잘 키운 것 같아.' 하며 흐뭇해한다. '우리가 아니라, 다 내 덕분이거든?'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으며 나는 도덕경을 읽는 자의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더 나아가 약간의 반성도 한다.


애들은 그렇게 정성껏 키웠는데, 남편은 왜 그렇게 막 대했나? 큰 소리 한 번 안 치는 우아한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참을 인자를 그렸으면서, 왜 남편에게는 그렇게 소리를 치고 협박하며 감정의 찌꺼기를 다 배설했던가. 애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편은 평생 함께 해야 할 사람인데....


새벽에 갑자기 깨어나 읽은 도덕경의 말씀을 이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에서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통 트는 새벽,

잘난척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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