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ten by C
남편은 백발이다. 그것은 강력한 유전자의 결과다. 남편이 감당해온 생의 무게나 사연과 상관없이 하얀 노인의 머리를 좀 일찍 갖게 된 것이다. 예정된 운명이랄까. 그리고 이제쯤은 흰머리가 많아져도 크게 낯설지 않은 나이가 돼 버리기도 했다. 그의 머리는 진즉에 노인의 색체에 도달했고, 신체의 나머지 부분이 부지런히 그 나이를 좇고 있는 중인 셈이다.
우리 집에는 백발의 남자와 백발의 여자가 산다. 남자는 나의 남편이고, 여자는 나의 노모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그럴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브랜드별 염색약의 특성과 효능에 대해서 나름대로 데이터를 갖고 있고, 오랫동안 셀프 염색을 해왔더랬다. 그러다가 혼자서는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시절에 이르자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염색을 하고 온 날이면, 이 염색약은 이렇게 비싼데 왜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는지 모르겠다, 지난 번 미용사 솜씨가 더 나은 것 같다, 등등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검은 머리가 난다고 해서 검은콩도 많이 먹었다. 우리 집 밥에 검은콩이 빠져본 일이 없다. 검은콩의 기적이 실현될 때까지 그녀의 불만은 계속될 것이다.
노모는 건강한 할매가 아니다. 건강한 할매란, 형용모순이기도 하다. 할매가 될 정도의 세월을 살아온 이라면 누구라도 팔팔한 신체기관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건강한 할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안타깝게 만드는 건, 그녀가 무던한 성격도 아니라는 점이다. 노모는 통증에 예민하고 아픈 곳이 많다. 류머티즘 관절염과 고혈압과 당뇨와 백내장, 녹내장, 갑상선 호르몬 이상 같은 질병들의 보유자이다. 먹는 약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나는 당연히 진심으로 엄마를 염려하고 있다. 있는 병을 하루아침에 치료할 수는 없으니 염색부터 그만두라고 했다.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나 약을 먹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로운 생활요소를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때 노모는 말했다.
“흰머리가 폭삭 내려앉아서 정말 할머니 같을 텐데?”
노모는 흰머리에 대해서 말할 때면 늘 ‘폭삭’이라는 부사어를 함께 말한다. 나도 남편도 그렇게 말한다.
‘폭삭’을 언제 또 쓸까.
폭삭 망했다. 그럴 때 쓴다.
나는 폭삭 내려앉은 흰 머리를 생각할 때 아주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어떤 움직임이 떠오른다. 무성 영화처럼 소리가 없는 움직임. 흰 머리는 소리 없이 흰 머리가 된다.
포털 사이트 어학사전에서 그 용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부피만 있고 매우 엉성한 물건이 보드랍게 가라앉거나 쉽게 부서지는 모양. --> 쌓인 낙엽이 폭삭 가라앉다.
맥없이 주저앉는 모양 --> 그는 힘이 다 빠져 그만 폭삭 주저 앉고 말았다.
쌓였던 먼저 따위가 갑자기 가볍게 일어나는 모양.
심하게 삭거나 썩은 모양 ---> 폭삭 곯은 달걀
기운이 아주 꺼져 들어가는 모양 --> 불이 폭삭 사그라지다.
담겼던 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모양 --> 떡을 시루에 폭삭 엎어 놓다.
3번을 제외하고 나며, ‘폭삭’의 에너지는 하향하고 주저앉고 꺼져버린다. 그러니까 어떤 종류든 에너지가 늙거나 망했거나 할 때, ‘폭삭’을 갖다 붙이면 대충 말이 된다는 것이다.
쓸쓸했다.
흰 머리가 폭삭 내려앉아서 정말 할머니 같을 거라는 노모의 그 말이 쓸쓸했다.
“할머니가 할머니 같아 보이는 건데, 뭘.”
나는 그렇게 밖에 답하지 못하나.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할머니 같지는 않지?”
“맞아. 할머니 계에서는 최고로 젊어!”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나의 잔소리 때문인지, 염색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인정해서인지, 노모는 염색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완전 할머니가 됐다. 이제는 숱도 없어서 하얗고 허하다.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됐다.
나는 그런 노모와 남편을 한 데 묶어 놀린다.
“두 분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시니 보기 좋습니다!”
혹은,
“아버님, 어머님을 이렇게 모시고 식사를 하다니 행복하네요.”
나는 남편의 흰머리에 오래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왜냐면, 늙어 보이니까. 나는 단순한 사람이고, 스트레스도 단순한 것에서 온다.
나는 특별히 안티 에이징에 관심이 없고, 별 다르게 애쓰지도 않는다. 나이 드는 일에 저항하지 말자고 마음으로 자기최면도 자주 거는 편이다.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주장을 하는 거다. 그런데도 남편의 흰머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저항적인 걸까. 나는 몇 차례 염색약을 사다가 집에서 염색을 해 준 적이 있고, 그를 어르고 달래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앉혀 놓은 적도 있다.
모든 일에는 항상 명분이 필요한 법, 안티 에이징에 애쓰지 않으면서 굳이 남편의 흰머리를 검은 머리로 위장하려 드는 이유에도 그럴싸한 명분을 대야 한다. 아무리 궁리해도 그럴싸한 게 찾아지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의 흰머리가 부끄러웠다. 그와 나의 11년 나이차를 감안한다면, 그가 내게 맞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만들어내는 투샷에서 어색하거나 튀는 부분 없이 자연스러움을 연출해내는 것이 그의 의무다. 그렇게도 생각했다. 내 안에서 그게 당연했으므로, 그 안에서도 당연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나의 남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다.
그는 입으라는 대로 입겠지만 염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먹으라는 대로 먹겠지만 염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자기의 ‘흰’을 지키겠다고 비장하게 선언했고, 내내 그렇게 백발로 살고 있다. 미용실에 가지 않고 내버려둘 때는 백발을 뒤로 질끈 묶었고, 미용실에 가면 삭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짝 얼어버린다. 어떤 길이에도 염색은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내린 하얀 백발을 백발인 채로 지키느라 생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것은 결코 하향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지속하는 에너지고 버티는 힘다. 그런 건 솟구치는 힘이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시간을 쌓아간다. 이제 남편은 백발이 있대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노모는 이미 그 시간을 훌쩍 지나 백발인 머리가 비어가고 있기까지 하다. 시간을 빌드업하는 일과 그런 에너지에 대해서 나는 폭삭 말고 다른 말을 찾고 싶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