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겁쟁이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데

by Lazy Yoga Club


그날은 마누 집 근처 카페에 앉아 네팔과 인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내뱉고 있을 때였다. Only 30초만 쓸 수 있는 Warm 샤워 이야기, 초딩수준의 영어실력으로 30분을 떨면서 티칭 했던 얘기, 인도에서 따끈한 소똥을 밟은 얘기, 화장실 타일에 깔린 연가시 얘기, 원숭이의 습격까지 현장 중계 수준으로. 열심히 리액션하며 듣던 그는, 문득 나를 가만히 보더니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분위기가 좀 달라졌네?”

분위기?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내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너는 무슨 그런 얘기를 소똥 얘기할 때 하니… 뭐 내 몸 주변에서 아우라라도 보이는 건가. 인도에 발 한 번 붙였다고 갑자기 수행자의 포스가 생긴 건가. 아니면 부산과 네팔, 인도를 거치며 쌓인 수련들이 얼굴과 말투에 묻어나기라도 한 걸까. 괜히 자세를 바로 세우고 앉으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되묻자, 그는 짧은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이제 조금, 요가하는 사람 같다고.


그 말을 듣는 내 입꼬리가 눈치도 없이 씰룩거렸다.

그래? 나 좀 달라졌나?


한참을 또다시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 마냥 떠들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서울에서의 수련 이야기로 흘렀다. 인도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꾸준히 수련을 이어나갈 개인레슨 선생님을 찾는 중이었다.


문제는 선생님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부산, 네팔, 인도… 가는 곳마다 삶 자체가 요가였던 분들을 만나서일까, 내 눈이 꽤나 높아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누가 해주는 요가상담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요가원 원장님의 인스타 글과 사진만 봐도 저분이 수련을 하시는 분인지 사업을 하시는 분인지 금방 파악하게 된 수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수련과 공부를 놓아버린 원장님들도 적지 않았다. 의심하지 않고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선생님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내가 혹할만한 선택지를 내놓았다. 굳이 다른 곳을 헤매느니, 자기 집에서 1:1로 수련을 이어가 보자는 제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 수련실로 쓰고 있는 빈 방. 그리고 내 재정 수준에 맞춘 합리적인 가격. 모두 마음에 들었다. 이미 검증된 사람을 곁에 두고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누의 집에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


수업은 예상대로 좋았다. 아무 자세나 나열하는 게 아니라 재활을 중심으로 그날의 컨디션과 몸에 필요한 자세들을 이어갔다. 가장 먼저 무너진 발 아치를 살리고, 내가 배워온 아헹가요가에서의 정렬을 내 몸에 맞게 바꿔주었다. 한 달 수업료보다 더 깊고 방대한 지식과 이론들이 나의 커리어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성장시켰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의 마누는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서로 소파에 기대앉아있으면 손을 잡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났다. 내가 요가매트에서 낮잠을 자려고 하면 팔베개가 기본 옵션처럼 따라왔고, 길을 같이 걸을 때면 어깨동무와 팔짱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점심을 같이 먹다 입가에 뭐가 묻으면, 아무 말 없이 닦아주기도 했다.


나는 겉으로는 아주 평온하게 그 모든 걸 받아냈다. 그러나 속에서는 다른 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 자식이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나를 시험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연애의 시그널인가. 요가 지도자 과정 어디에도 이런 커리큘럼은 없었는데 말야.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전화의 비중도 조금씩 달라졌다. 요가 이야기 대신 하루의 안부를 묻고, 굳이 궁금한 게 없어도 통화가 이어졌다. 서로의 과거를 꺼내보기도 하고, 큰 뉴스가 터지는 날이면 그 주제에 관련된 가치관을 비교하며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들에 쓸데없이 오래 웃음이 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썸이잖아 이거.


하지만 나는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었던 순간들 속에서도 행동의 이유를 묻지 못했다. 그 머뭇거림에는 혹여나 잘 정돈된 이 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운, 사랑이 시작될 가능성보다 사랑이 끝날 가능성을 더 먼저 계산하는 내가 있었다. 3년전, 당돌한 고백 당시엔 보이지 않았던, 그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마누와의 개인레슨이 진행될수록 요가강사로서의 스킬은 점점 발전하는 반면, 연애와 고백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신중한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이 사람과 연인이 되어도 괜찮을까?

이제는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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