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20년 겨울, 요가 수련을 6개월째 이어오던 나는 본격적으로 요가지도자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무살때부터 10년. 할 줄 아는게 미술밖에 없는 내가 겁도 없이 요가강사를 인생의 두번째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건, 역시 마누의 설득과 역할이 컸다. 결정 직전까지도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그가 나의 불안과 걱정을 모두 부숴주었기 때문이다.
"요가강사는 뭐 아무나 하냐? 몸이 이렇게 굳어있는데 무슨 선생님을 해."
-> "몸이 평생 굳어있을까? 계속 수련할텐데. 그리고 뻣뻣해서 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누나의 몸은 아주 훌륭한 교과서가 되줄껄. 내가 장담할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요가안내를 어떻게 해. "
->"그러니까 배우러가야지. 미술강사 10년차잖아. 이미 누굴 가르쳤던 경력은 충분해. 안내 멘트만 바꾸면 돼."
"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다칠까봐 무서워!"
->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을거야. 내가 다 알려줄게."
또- 또 말 잘해서 나 할말없게 만들지.
그래. 그가 봐주었던 타로카드처럼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했다. 다 알려준다며. 그럼 지도자과정 하는 곳도 알려줘.
당시의 내가 지도자과정을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였다. 1. 각목같이 뻣뻣한 몸뚱아리로도 수련이 가능한 곳. 2. 철학이나 생리학 등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제외하고 아사나의 기초를 탄탄하게 배워나갈 수 있는 곳. 3. 과정의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은 곳.
이 조건을 듣고 난 뒤 마누는 ‘아헹가요가’를 전문으로 하는 센터를 추천해 주었고, 그곳의 위치가 부산이었다.
선택 직전까지는 세상 어렵고 힘들더니만, 마음을 먹은 순간부턴 모든 일들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무언가를 억지로 노력해서 밀어붙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길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위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느낌. 어떤 순간은 설명보다 감각이 앞선다. 해야 할 근거보다, 이상하게 확신이 먼저 오는 순간. 그래서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선택이 맞았다는 걸.
그렇게 1년을 머물렀다.
그 사이에 나는 애인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 사이사이, 마누의 전화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 정도 이어졌던 상담은 A부터 Z까지 온통 요가 이야기뿐이었다. 주로 내가 배운 자세에 대한 해부학적인 정렬 내용이나, 명상에 대한 지식, 요가 철학에 대한 지식, 온라인 수업 구성, 수련하면서 느낀 점, 티칭 할 때 주의점, 아유르베다적 식습관, 인스타그램에서 뜨고 있는 선생님, 요즘 핫한 요가원, 요가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 마누가 진행하는 특강 이야기,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수업 이야기, 좋은 요가선생님이란 무엇일지, 요즘 읽고 있는 책 등등…
수십 통의 전화는 한 번도 선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묵직한 책임감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부산에 오기로 한 건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을 해보았지만- 그는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 연인이 아닌, 제자로 남아도 관계를 키워나갈 수 있다는 걸 그가 행동으로서 증명해 주었으니까.
애인은 가끔 질투했다.
마누의 존재를 말하면 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 질투가 상담 전화를 끊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요가강사가 막 되어가던 시기였고, 초보 강사에게 있어 최신 근황과 정보는 ‘생존’과 비슷한 단어였기 때문에. 마누는 언제나 그랬듯 부산에 머무는 1년 내내 나의 수많은 질문들에 답해줬다. 이성으로서의 감정 없이, 대신 정확하게. 나는 그 정확함에 마음껏 기대었다.
‘널 가질 수 없다면 사용하겠어!!’
마누와 통화내역이 쌓일수록, 나는 연차에 비해 꽤 괜찮은 요가지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용하겠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언제나 나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켜봐 주고 길을 열어주는 그가 고마웠다. 마누의 상담은 내가 네팔에 있든, 인도에 있든 변함이 없었다. 그 우직함과 든든함이 요가를 계속하게 했다.
좋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또 다시 각자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가지 사유로 부산에서 만난 애인과는 정리를 하고, 네팔과 인도에서 한 달 넘게 수련을 한 뒤 기념품을 들고 그를 찾아간 날 이었을까.
엥…?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