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서
코로나가 유행하면서부터 별안간 갑자기 고립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 틈으로 밸런스게임이나 MBTI 테스트들이 엄청나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제목을 바꾼 테스트들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방법은 항상 똑같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안에서 두 개의 답으로 갈라진다. 짜장면 vs 짬뽕, 부먹 vs 찍먹, 양념 vs 후라이드, 찐빵 vs 호빵, 슈붕 vs 팥붕…
그들은 또한 '나'를 문장으로 정의해서 가둬두는 것 매우 좋아한다.
나 역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을 때는 테스트 속 단어와 문장들을 찾아다녔다.
사회 구성원 안에서 어디에 속해있는지 모를 때는, 몇 번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결과들이 내 안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으므로.
나'는 ______________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테스트를 누를 때마다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랄까, 안정감을 주었던 그 확고한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옥죄고 답답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밑줄 위로 어떤 단어가 떠오를지 궁금하다.
위에 쓰인 문장은 완성되는 그 즉시 수백만수천 개의 모양을 가진 자아를 만들어 낸다.
저 밑줄 위에 쓰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단어들 속 자아가 없는 것이 단 한 개도 없다.
단어 속에는 자동으로 따라붙는 집단 사회의 생각이 섞인다. 가치관이 들어가고, 그 단어로 떠오르는 타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단어에 들어 있는 시대의 흐름이 섞이고, 단어에 씐 이미지로 내 겉에 포장지가 한 겹 더 붙는다.
쉬운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ㅡ민주당ㅡ이다.”
아주 순식간에 나를 잘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색을 파랑색으로 떠올릴것이다.
‘나’는 ‘무엇’이 된다는 이 단순한 문장 하나로 수천 개의 생각과 대립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단어로서 연상되는 색깔이 묻고, 그 단어에 또다시 감정이 담긴다. 그렇게 감정이 담긴 문장에는 시간이 생긴다.
밑줄 위에 내가 그 당시 선택했던 과거의, 특정 상황 결과가 누적된다.
결과 보기를 누르면 테스트를 했던 나를 나타내는 문장 전부는 과거가 된다.
테레비를 보다가 어떤 교수님이 MBTI 테스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해 주시던 장면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MBTI 검사가 유행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성격을 알아가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사회가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해주셨다.
실제로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끊겼던 코로나 시기에서부터 MBTI는 정말 좋은 스몰톡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고,
서비스 직종에 있는 나 역시 낯가리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성격유형을 맞춰보면서
빠른 시간 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구로서 사용했던 적이 자주 있다.
하지만 본인을 유형 하나에 묶어두고, 혹은 과거에 선택했던 결과지에 적힌 '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슬픈 일이란 생각이 든다.
대담한 예술가도 되고, 자유로운 수호자도 되고, 낭만적인 과학자도 되면 좋을 텐데. 예술적인 책략가도 멋지고 사교적인 중재자도 너무 멋진데.
꿀꿀한 어느 날엔 짜장면을 선택하다가도 쌀쌀한 날엔 짬뽕을 먹고,
부드러운 탕수육이 땡기면 소스를 부어먹다가도 빠짝한 탕수육이 땡기면 찍어먹는.
어떤 놈이 나한테 지랄을 하면 같이 소리 지르는 개가 됐다가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도움을 주는 그런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인간은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귀엽고 섹시하고 예쁘고 어쩔 땐 잘생기고 멋있고 추하고 더럽고 게으르고 모자른…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최근 나의 성격유형에 대한 대답을 물어보면 글의 제목처럼 답변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요가’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뜻함으로.
매일 달라지는 나를 설명하기에 그만한 답이 없는 것도 같다.
나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현존 또는 현실 속에서
나를 탐구해야 한다. 즉, 내가 바라는 ‘나’가 아니라
지금 있는 ‘나’를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J.Krishnamurti
자아를 초월하고 싶다. 거창한 깨달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보다 더 자유롭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 문장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관없이 어떠한 결과에 갇혀 안주하고 싶지 않다.
과거의 내 모습, 바라던 모습의 나를 떠나 시간의 축을 벗어난 현재의 나를 탐구하며 진짜를 마주하고 싶다.
과거의 껍데기와 이미지가 모두 벗겨진 상태로 세상을 살고 싶다.
그러므로 매 순간 나에게 더 많은 경험과 관찰과 배움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은 완전한 나로 살기를 바란다.
‘나’라고 믿어왔던 축적되어 있는 데이터를 언젠간 버리게 되는 날이 오길.
다시 위로 올라가 "나는 ______이다."의 문장을 바라보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순간의 연속인, 그래서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는 ‘나’라는 단어 뒤에
무슨 단어를 적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