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의 기준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엄마 역시 죽음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원하는 '좋은 죽음'은 대략 이렇다. 죽을 시간이 되면 고통스럽지 않게 심장이 멈추는 것.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애매한 하루들이 비교적 짧은 것. 약을 먹어 삶을 억지로 연장하지 않는 것.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엄마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요가 경전의 어떤 구절도, 시한부 선고도 아니었다.
한 지붕 아래 암, 당뇨, 관절염, 치매 등 각종 지병이 있었던 시부모님을
며느리의 이름으로 10년 가까이 모시며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구체화시켰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녀의 자식들 모두는 엄마이자 할머니였던 자리의 부제를 느끼며 울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고모와 친척들이 오열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엄마와 나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3개월 전부터 침대에서 단 한 발짝도 걸어 나오지 못한 할머니를 지켜본 우리로서는
의미 없는 시간을 견뎌내며 사는 것이 할머니에게 너무 큰 고통이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차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부터는 오히려 할머니에게 빨리 죽음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죽음만이 할머니를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라는 것을, 할머니가 이 좁은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던 하루하루였다. 오랜 삶에서 해방된 할머니에게 입관하기 전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이제 편안하시라고
속삭여드렸던 기억을 적어본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립스틱과 좋아하는 옷을 입고 젊어 보이는 모습으로 내 꿈에 등장하셨던 것도.
Om Tryam bakam Yajamahe
Sugandhim Pushtivardhanam
Urvarukamiva Bandhanan
Mrityor Mukshiya Maamritat
- Mahamurityunjaya Mantra -
우리는 세 개의 눈을 가진 분을 숭배합니다. (God Shiva)
향기롭고 모든 것을 기르는 사람.
익은 과일이 저절로 줄기에서 떨어지듯
우리도 죽음과 필멸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마하무리튠자야’라는 만트라의 가사가 떠올랐다.
그녀의 영혼이 듣고 있다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가사들을 반복하며 암송했다.
과일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썩은 과일도 다 익지 않은 과일도 바람이 세게 불면 떨어진다.
그것도 과일이 가진 운명 중에 하나이니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죽음이 온다는 것은 태풍이 오기 전, 대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셈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게 현상을 거부하는 것보다 이롭다.
엄마가 나에게 본인의 소망을 얘기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엄마가 삶의 끝자락에 다다르게 될 때, 마음의 흔들림 없이 엄마의 뜻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가족이 될 사람에게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말해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원하는 죽음의 형태를 들어둬야지.
나의 장례식장을 상상해 본다. 이왕이면 슬픈 분위기가 아녔으면 좋겠다만.
놀란 마음으로 찾아올 사람들이 마음에 스쳐 지나간다. 이미 죽어버린 나는 말이 없다.
그러나 이 글을 본 사람은 내 영정사진 앞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고 노래에 맞춰 춤을 췄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죽음으로서 비로소 자유로운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다가올 나의 죽음도 슬퍼할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 찾아온 모두가 나의 영혼이 자유를 얻어 새로운 몸을 찾아 나서는 일에 대해 축복해 주길.
이미 내가 버리기로 선택한 영혼의 껍데기일 뿐인 몸에 많은 의미부여를 하지 않길!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가진 물질적인 것들, 버려야 할 것들이 스친다.
이 많은 짐들을 누가 정리해 주려나. 쓸데없이 사진은 왜 이렇게 많이 보관해 두었나.
‘언젠가‘라는 태그를 달고 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입은 옷과 신발들은 산더미다.
죽음이 항상 곁에 있는데도 당장 눈앞에 있는 하루에 묶여 살기 바쁘구나...
미련과 집착 없이 삶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다. 유명한 인도의 요가선생님인 아헹가 선생님의 죽음처럼
그날의 할 일을 다 하고는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아프지 않게 심장이 멈추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매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