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이해하기
최근 공부하는 학문 내에서 양자역학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체 이것이 에너지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 1도 감이 오지 않다가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다양한 영상을 접하면서야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며 느낀 바로는 이 학문이 아마 과학적인 영역에서 설명할 수 있는 최초의 비과학적인 영역이 아닐까 싶다. 예체능으로 대학을 준비하고부터는 이과에 관련된 지식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지도 못했는데… 에너지 공부하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과학을 만날 줄이야. 학계에서도 아직 증명이 안된 학문이 하나의 분명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비과학을 믿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다지.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조차 이 이론을 완벽히 증명할 수 없다니!
그래서 양자역학이 뭔데?
우리가 배워온 기존의 과학들은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게 딱 떨어지는 즉, 증명할 수 있는 학문이었다면 양자역학은 초기 조건을 알고 있어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현대과학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중요한 전제는 세상 모든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인 사물, 사람 역시 원자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자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너무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양자역학은 이 아주 작은 크기인 원자의 메커니즘을 기술하는 학문이다. 원자에는 규칙이 있는데 마치 지구의 일정 궤도를 주변으로 행성이 자전하는 것처럼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회전한다. 회전은 원자에 빛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원자가 많은 개수로 집합했을 때는 전자가 빛을 방출하면서 눈에 보이게 된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은 원자의 아주아주 많은 집합체라는 뜻과 같다.
이 글 안에서는 많은 양자역학 실험과 이론 중 1801년 토마스 영이라는 과학자가 발표한 이중슬릿을 그림으로 정리했다. 이중 슬릿 실험은 물의 파동과 빛의 파동을 동일하게 보고, 빛의 파동을 일으켰을 때 그 결과가 똑같이 나오는지 관찰하는 실험이다. 실험 안에서 토마스 영 씨는 원자의 파동 결괏값이 놀랍게도 그 실험을 보는 자. 관찰자라는 변수에 의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촛불을 켜면 방 전체에 불빛이 퍼지는 현상과
연못 한가운데에서 시작한 잔물결이 연못 전체의 가장자리로 동시에 도달하는 현상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추론하기에 빛은 물결과 비슷했다.
따라서 사방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존재한다 생각하고,
그 물질에 플래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빛은 그 물질을 통해 파동이 전파된 결과였다.
15p 양자역학 이야기 /팀 제임스 - 한빛 비즈 -
첫 번째 실험은 세로로 길게 뚫린 벽 하나, 그 뒤에 검출기 스크린을 세워두고 중앙에 빛입자를 한 번에 하나씩 일정한 속도로 쏘면서 원자의 이동 경로를 관찰해 보았다. 이 실험 속에서 원자는 사진에서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뚫린 벽 그대로의 모양으로 파동처럼 퍼지며 스크린에 위와 같은 흔적을 남긴다.
두 번째 실험은 벽에 뚫린 세로 틈을 두 개로 나누어 똑같이 스크린을 세워두고 중앙에 빛입자를 한 번에 하나씩 일정한 속도로 쏘면서 원자의 이동 경로를 관찰해 보았다. 원자는 어느 하나는 왼쪽 틈을 향해, 또 하나는 오른쪽 틈을 향해 빠져나가면서 방사형의 형태로 뒷 쪽 벽을 향해 얼룩말 무늬 같은 불규칙적인(개별로 봤을 때!) 이동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 실험은 두 번째 실험과 동일한 상태의 조건을 두고 그 조건에 ‘관찰자’를 추가했다. 그러자 원자는 누군가 지켜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방사형으로 퍼지지 않고 두 개의 세로줄과 똑같은 모양으로만 이동경로를 남긴다.
여기까지가 내가 배웠던 양자역학의 일부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왜 그런 반응이 일어나는 건지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를 몰라서 참 놀랍지 않나요? 하면서 영상이 끝났다는 것. 선생님이 보내주신 링크 외에도 최대한 쉬운 설명들의 양자역학 영상을 들어보고 나서야 결괏값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명상 지식들에 이중슬릿 현상을 대입해 보았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위에 설명한 양자역학을 명상에 비유해 보자.
안내자들은 주로 (사실 맨날ㅎㅎㅎ) 사람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내려놓을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걸 대체 왜 내려놓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나는 양자역학이 왜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욕망이 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길은 마치 세 번째 원자 실험처럼 본인이 욕망하는 단 하나의 길 뿐이 없다. 내가 에너지의 흐름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는 얼룩말 무늬의 파동으로 즉 더 많은 가능성으로 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두 개의 길로만 퍼지며 길 외에 주변 조건은 잘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쉽게 무시당한다.
하나의 생각에 빠졌을 때, 혹은 앞만 보고 달렸을 때에도 역시 위와 같다. 욕망이 아닌 어떤 긍정적인 목표치여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욕망은 곧 ‘관찰자’ 이므로 원자 에너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에서는 긍정적인 그 길을 '상칼파'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간절히 원할 때, 희망과 염원을 무의식에 심어서 그 방향으로 가게끔 인도한다.
우리는 왜 직접 보지 못한 전자의 운동이 거시 세계의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하이젠베르크 -
요가명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안내와 호흡방법들은 모두 에너지를 다루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내가 어떤 한 가지를 강하게 바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가장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관찰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많은 기회와 더 넓은 사고를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갈망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존에 습관처럼 해왔던 생각들을 내려놓고, 호와 불호, 나의 가치 판단을 점점 줄여가며 생각의 양과 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지위, 생각, 욕망, 목표, 책임감, 역할을 진정으로 내려놓을 때 비로소 기존과는 다른 파동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중슬릿의 세 번째 실험처럼 말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내쉬는 숨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보자. 팽팽했던 고무줄을 숨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때 나의 마음속 진동이 서서히 짙어지고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은 그 순간 몸에서는 기분 좋은 이완감이, 그리고 깊고 편안한 숨이 당신과 함께 머물 것이다. 그것이 관찰자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다.